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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마당 > 공자에 길을 묻다
"공손하게 몸을 낮추고 바르게 남쪽을 향해 앉아있을 뿐"공자와 애덤 스미스 2
윤진평 논설위원  |  yjp005@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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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2.01  13: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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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와 애덤 스미스 2

   
▲ 자연의 이치에 따라 무리하지 않고 역행하지 않으며 그저 순리대로 움직이도록 하는 것이 최고의 다스림이다.

 

공자가 말했다. “무위이치, 즉 억지로 하지 않고도 잘 다스린 이는 순(舜)일진저! 도대체 어떻게 하셨던 걸까? 다만 공손하게 몸을 낮추고 바르게 남쪽을 향해 앉아있을 뿐이던 것을.”(子曰, “無爲而治者其舜也與! 夫何爲哉? 恭己正南面而已矣”:《논어》, 위령공편)

애덤 스미스가 공자 등 중국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는 주장에 대해 일부에서 고개를 갸우뚱하는 것 같다. 따라서 이번 장에서는 그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고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한 구체적 사료를 정리한다.

애덤스미스가 공자의 철학(맹자나 사마천 등도 포함)을 받아들인 경로는 3가지로 추정된다(황태연

《공자와 세계 2》).

첫째는 스미스 자신의 직접 독서다. 그는 영국 옥스퍼드 벨리얼 칼리지에 다니던 시절(1740~1746)에 도덕론 논쟁을 벌이던 당대의 프랑스 철학서적을 광범위하게 섭렵하면서 공자와 맹자, 사마천 등의 중국 서적들을 읽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증거는 1764~66년 케네, 튀르고, 볼테르를 만나기 전에 집필하여 1759년에 출간한《도덕감정론》에서 스미스가 자주 중국을 사례로 들거나 볼테르의 <중국의 고아>①를 아름다운 비극으로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공자와 중국 전문가인 데이비드 흄과의 교류 때문이다. 두 사람은 1748년도에 에딘버러 대학 계몽학파 서클에서 만나 오랫동안 친밀하게 지냈다. 스미스가 자연스럽게 흄에게 공자 등 중국에 대한 지식을 얻었을 것이다. 또 케네, 튀르고, 볼테르, 벤자민 플랭클린, 달랑베르, 엘베시우스, 모렐레 등 중농주의자②들과도 교류를 했다. 이 시기는 1764년부터 66년까지인데 스미스는 이때 파리 등지를 여행하면서 이들과 만났다. 이 내용은 모렐레의《회상록》에서 찾아 볼 수 있는데 아래와 같다.

“나처럼 형이상학을을 좋아하는 튀르고는 스미스의 재능을 칭찬했다. 우리는 엘베시우스의 집에서 스미스를 여러 번 만났으며 은행, 상업이론, 공채, 그가 중개하는 사업 등 여러 가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스미스는 흄에게 보낸 편지에서 튀르고와의 만남에 대해 언급한다. 스미스는 튀르고의 저서 <부의 형성과 분배에 관한 성찰>을 영어로 번역한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또《국부론》제3책 4절(5장 “도시상업은 어떻게 나라의 향상에 기여하는가”>에서 흄을 인용하여 상업의 정치경제적 효과를 종합적으로 기술하고 있기도 하다.

스미스는 시장기구의 작동 원동력이 인간의 이기심이라고 갈파했다. 즉 개인이 사적 이윤을 추구하는 이기심의 발로가 궁극적으로는 사회 전체의 이익을 가져온다고 간주했다.

“우리가 저녁 식사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정육점 주인이나 양조장 주인, 또는 빵집 주인의 자비가 아니라 그들이 자신의 이익, 즉 돈 벌이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라고 스미스는 갈파했다.

그는 경제가 인위적인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 시장에서의 경쟁이 고용과 자원의 사용에 있어서 ‘사회 전체의 이익에 가장 부합’되는 방향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경제정책의 궁극적인 목표는 국가의 부를 극대화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자유경쟁시장은 생산자가 소비자의 수요를 만족시키기 위해 움직이도록 만든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중앙에 앉아 어느 재화를 어느 정도 생산할지를 계획하는 사람이 필요하지 않다. 스미스는 자원배분의 효율성을 이루는 시장기능을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s)’이라고 설명했다.

개개인들은 보통 공익을 향상시키려 의도하지는 않을 뿐 아니라 증진시키는지 알지도 못한다. 그들은 보통 외국산업의 자원보다 국내 산업의 자원을 선택함으로써 자신의 안전만을 의도할 뿐이다. 그리고 국내산업을 그 생산문의 최대가치가 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으로 관리함으로써 각 개인은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 의도하는데 이러는 중에 그들의 의도의 일부가 아닌 목적을 증진시키도록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이끌려져 있는 것이다.

흄과 케네와 교류하면서 스미스는 흄으로 부터는 ‘자연스런 사회원리’를, 케네로부터는 ‘자연적 질서’를 알게 모르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두 사람은 공자의 ‘무위이치’나 사마천의 ‘자연지험’, 노자의 ‘무위자연’ 사상을 받아들였다. 사실 스미스가 꼭 공자의 무위이치만을 받아들였다고 하기보다는 중국의 이런 사상을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더 높다.

다음은 스미스의《도덕감정론》에 나오는 이야기다.

“부자는 단지 적치된 물건들 중에서 가장 비싸고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를 뿐이다. 그들은 가난한 사람들 보다 조금 더 많이 소비하고 자연스런 이기심과 탐욕에도 불구하고 자신들만의 편익을 꾀하고 자신이 고용한 수천 명의 노동에서 얻고자 하는 유일한 목적이 자신의 헛되고 만족시킬 수 없는 욕망의 충족이라 할지라도 그들은 온갖 발전의 생산물을 가난한 자와 나누게 된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땅을 모든 국민에게 동등하게 나눴을 때 이뤄지는 것과 거의 동일한 생필품 분배를 이루도록 이끌어지고 그리하여 그것을 의도하거나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사회의 이익을 증진시키고 인류종족을 배가 시킬 수 있는 수단들을 제공한다.”

이 부분에서 보이지 않는 손은 자본권력자와 경제적 약자 사이의 불평등한 분배와 권력격차를 정당화하는데 사용되고 있지만, 그것에 시비를 걸 생각은 없다. 왜냐하면 이 글의 목적은 스미스가 공자의 사상을 받아 들였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 중국산이란 주장은 영국 사상가 레슬리 영(Leslie Young)에 의해서도 확인된다.

영은 1996년 그의 논문 <시장의 도: 사마천과 보이지 않는 손>을 통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케네, 튀르고 등 프랑스 중농주의자들이 중국으로부터 수입한 사마천의 '자연지도' 개념의 다른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사마천의 경제이론은 케네, 스미스 등 유럽인들에게 전해져 서구의 자유방임 중농주의와 자유시장론을 낳았고, 보이지 않는 손의 의미와도 일치한다는 것이다.

사마천은 한나라 무제 때 국가전매사업과 국유기업을 과도하게 확대해 민간부분의 자유시장을 없앤 '상용향'이란 경제체제를 비판하며 "물자의 유통·수요공급 조절 등은 자연에 따라 저절로 이루어지니 통치자는 이를 따르기만 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공자가 순임금을 최고의 이상형 군주로 여기는 이유는 “천하를 소유하였는데도 간여하지 않았다(恭己正南面而已矣)”는 데 있다. 이것은 곧 천하를 자기 것인 양 마음대로 사유화(私有化)하지 않고 각자의 위치에 맞게 시스템에 맞춰 관리했다는 의미다. 이는 오늘날 기업에서의 ‘소유와 경영의 분리’에 해당한다.

무위이치는 기업이 지향해야할 지속적 가치고 핵심 경영개념이다. 사장이 무엇을 지시하지 않아도 직원이 알아서 움직이는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 이는 조직원이 알아서 움직이는 자율경영을 추구해야 한다는 의미다.

16세기 중엽부터 청교도 혁명 전에 걸친 1세기 동안의 영국 사회의 가장 주목할 만한 사실은 젠트리(gentry) 의 등장인데 이들은 하원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지방에서는 치안 판사를 맡아 지방 행정을 장악하는 등 가장 유력한 사회층이 되었으며 중국의 내각제적 제한군주정에서 영향을 받아 1688년 명예혁명을 통해 제한군주정을 이루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이 무렵 입헌군주제의 탄생을 일컫는 '왕은 군림하나 통치하지 않는다'는 유명한 말이 나왔는데, 이 말도 공자의 '(순임금과 우임금이) 천하를 영유했으나 이에 간여하지 않았다'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주장도 있다. 우리 조선에서도 그러했지만, 중국에서 왕권은 간언·상소제도 등 여러 견제 장치에 의해 이중삼중으로 제약되어 있었다. 명나라 때부터는 내각의 권력부립적 의정권한도 왕권 제한에 기여했다.

마지막으로 공자가 지적한 무위이치, 곧 ‘억지로 하지 않고도 잘 다스려진 정치’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데도 다스려지지 않는 것이 없다”는 두 손 놓고 하늘만 바라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무위이치란 덕치(德治)의 다른 표현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공기(恭己/공손하게 몸을 낮춤)는 스스로의 몸을 낮추고 상대방을 높이라는 이야기다. “덕으로써 하는 정치는 마치 북극성이 그 자리에 있으면, 여러 별들이 그 북극성을 중심으로 향해서 도는 것과 같다”고 한 공자의 말은 이를 가장 잘 표현해준다.

------주해

①중국의 고아

중국 원나라 작가인 기군상이 13세기 후반에 쓴 작품으로 알려진 <조씨고아>를 볼테르가 편역한 작품. <사기>에 나오는 춘추 진나라의 장군 도안고에 관한 고사를 극화한 원곡으로 작품에 ‘고려’가 등장하기도 한다. 볼테르는 <조씨 고아>에서 두 가지 비극적 상황, 즉 은인의 아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아들을 희생해야 하는 정영의 갈등과 친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양아버지를 배신해야 하는 조무의 갈등 중, 전자만 취하고 후자를 배제했다.

②중농주의

국가사회의 부(富)의 기초는 농업에 있다는 경제사상으로 18세기 후반 프랑스의 F.케네를 중심으로 전개된 경제이론과 경제정책을 가리키는 말이다. 국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농민의 희생으로 강행되고 있는 중상주의(重商主義) 정책에 반대하여 농업을 유일한 생산적 산업이라고 생각하여 농업의 자본주의화(영국형 대농 경영제도의 창출)에 의해 농업을 파멸상태에서 절대왕정(絶對王政)의 재정적 위기를 극복하자는 것이었다.

자연법 사상에 바탕을 둔 인간사회의 자연적 질서의 존재를 확신하고 그 질서가 전면적으로 실현되었을 경우의 '위대한 왕국'을 상정한 것이다. 생산계급인 농민과, 비생산적인 상공업자, 농민의 잉여를 지대(地代)로서 받아가는 지주(地主)의 3대 계급 사이에서 해마다 총생산물, 즉 부가 어떻게 순환되고 있는가를 재생산과정으로써 체계적으로 파악하여, 케네는 최초의 이론적 분석인《경제표(經濟表)》를 작성하였다.

이 착상은 경제학의 성립에 중대한 공헌을 하였으며 자유방임정책의 입장에서 곡물수출의 자유 및 가격통제의 철폐를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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