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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마당 > 공자에 길을 묻다
내가 너의 등을 긁어 줄 테니 너도 나의 등을 긁어 달라데이비드 흄과 공자(상)
윤진평 (본지 회장)  |  yjp005@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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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6.07  13:0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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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흄과 공자(상)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내가 너의 등을 긁어 줄 테니 너도 나의 등을 긁어 달라’고 했다. 어디서 비슷한 말을 들은 것 같지 않은가? 그렇다! 공자는 논어에서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은 남에게 강요하지 말라(己所不欲 勿施於人)’라고 말했다.

언뜻 보면 서로 다른 말인 것처럼 생각된다. 그러나 사실은 둘 모두 서(恕)다. 이는 자신의 지극하고 참된 마음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다. 내가 상대의 등을 먼저 긁어주는 마음, 그것이 바로 배려이다. 그리하면 상대방도 나의 등을 긁어줄 것이다. 이리하여 상호간의 배려와 동지애가 생겨난다.

다른 사람과 어울려진다는 것은 좋은 일도 많지만 때로는 싫은 것도 해야 할 때가 있다는 말이다. 이는 남을 배려하지 않고 자기 입장만 생각하게 되면 배려는 물거품이 되고 만다. 이는 ‘내가 싫어하는 일을 남에게 시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 같은 자세는 사회공동체 일원으로써의 자격을 상실하게 만든다. 2500년 전에 이미 공자는 이를 꿰뚫어 보고 ‘기소불욕 물시어인’이라 말했던 것이다.

   
▲ 17~18세기 서양의 주요 철학자들은 공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데이비드 흄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좌로부터 흄, 케네, 리치

흄이 내가 너의 등을 긁어 줄 테니 너도 나의 등을 긁어 달라고 했지만 어찌보면 공자의 기소불욕 물시어인을 표절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혼성모방((pastiche)이라 하기엔 흄을 너무 깎아내리는 것 같고 오마주(hommage) 정도로 봐도 무방하지 않겠나 싶다.

그 이유는 흄이 너무나 착실하고 성실하게 공자를 공부했기 때문이다. 최근 연구에 의해 속속 드러나고 있지만 흄은 프랑스 파리 주재 대사관의 비서로 근무하던 1763년 경 프랑스의 대표적 친(親) 중국학자인 프랑수아 케네①와 자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이때는 그가 ≪인성론≫을 집필해 유럽에서 일약 스타로 떠오르는 때였다.

그는 또 중국에서 선교한 마테오 리치②를 비롯한 신부들이 소속된 예수회 신부들과 친했다. 이때 공자철학과 그리스 철학을 비교분석한 프랑소아 페넬롱③과도 선을 닿으려 했고 예수회 소속 라플레쉬스쿨에도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흄은 또 기독교의 거추장스런 구속을 타도하고 중국의 계몽적 종교적 관용을 떠받들며(중국은 유사 이래 종교적 박해를 거의 하지 않았다) 프랑스의 종교적 비(非)관용과 박해를 공격하는 '자유사상가들'(les libertins)‘의 중심인물이었던 벨(Bayle)을 추종했으며 벨의 사상을 상당 부분을 베끼기도 했다.

벨에 따르면 도덕은 이론적인 원칙들과는 무관하다. 그는 자신의 상대주의를 토대로 관용을 옹호한다. 일상적인 종교와 도덕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비도덕성을 보여 주었으며, 또 무신론이 결코 풍속의 타락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흄의 저서 《인성론》과 《미신과 광신》은 대부분 공자의 인(仁) 사상, 경험론적 인식론, 도덕감정론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미신과 광신에서 공자의 제자들을 “우주 안에서 유일한 이신론자들의 정규단체 선지자들‘이라고 칭하고 ”중국의 선비들은 어떤 사제도 교회 조직도 없다“고 말했다.

특히 인(仁)사상은 영국 지식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17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인간의 사고방식은 하늘에서 땅(자연)으로 내려오게 됐다. 인간이 사는 세상의 질서를 인간의 이성의 힘에서 찾으려 한 것이다. 영국에서는 흥기했던 학파 중 하나는 이성에서 찾으려는 캠브리지 플라톤 학파이고 다른 하나는 도덕감각에서 찾으려는 스코틀랜드 학파이다.

플라톤 학파는 회의론·무신론·유물론·이기주의에 반대하여 일어난 플라톤주의적인 종교적 자연철학의 일파로 이성과 신앙을 조화시켰으며 사랑의 종교로서의 그리스도의 실천철학을 제시하려고 하였다.

스코틀랜드 학파는 인간 내부에는 이성적 판단을 하기 이전에 직감적으로 선을 감지할 수 있는 도덕감이 본성에 내포되어 있으며, 이것이 인간이 도덕적 행동을 할 수 있는 기초이며 따라서 사회질서의 토대라고 주장했다. 이 학파는 흄의 회의론에 귀착하는 경험론적 입장을 비판하고 상식철학을 주장하여 상식을 진리·도덕·종교의 근원이라고 보는 이론을 전개하기도 했으나 공자의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당시 공자의 인애론(▲번지가 인에 관해 물으니, 공자가 말하길 일상생활에 곤손하고,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공경스러우며, 사람들과 어울릴 때에는 충실한 것이라 하였다(樊遲問仁 子曰 居處恭 執事敬 與人忠 ▲번지가 인에 관해 물으니, 공자가 말하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 하였다:樊遲問仁 子曰 愛人) ▲번지가 …(중략)… 인에 관해 물으니, 공자가 말하길 어진 이는 어려움에서는 남에 앞서고, 이득은 남에 뒤지려 한다. 그러면 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樊遲 …(中略)…: 問仁 曰仁者 先難而後獲 可謂仁矣) ▲안연이 인에 관해 물으니, 공자가 말하길 자기를 이기고 예(禮)로 돌아가는 것이라 하였다: 顔淵問仁 子曰 克己復禮爲仁 ▲염옹(중궁)이 인에 관해 물으니, 공자가 말하길 문을 나서면 큰 손님을 대접하듯 사람들을 대하고, 백성을 부리기를 제사 모시듯이 하고, 자기가 바라지 않는 것은 남에게도 하지 않는 것이라 하였다: 仲弓問仁 子曰 出門如見大賓 使民如承大祭 己所不欲 勿施於人)의 영향을 받은 유럽 철학자들은 ‘만인에게는 공통된 공감의 원리가 있다“고 주장한 랄프 커드워쓰(Ralph Cudworth)④, 제6감으로서의 ’도덕감각‘(공자와 맹자의 측은지심, 수오지심, 공경지심을 혼성모방함)을 주장한 허치슨⑤ 등 상당수가 있다.

도덕감정은 사람이 어떤 행위를 할 때 기분 좋은 느낌을 받거나 불쾌한 느낌을 받아 감지된다. 허치슨은 이것을 시인 또는 부인하는 상위 감각이라고 주장한다. 도덕감정 활동은 지각작용을 특징으로 하며, 이성 및 반성과의 차이가 강조된다. 이성은 다양한 추론을 통해 행위의 이해관계를 따져 선악을 판단하지만 도덕감정은 이해관계 없이 바로 선악을 식별할 수 있다. 이는 다른 사람의 행복을 원하는 기분이며, 본능에 뿌리박은 보편적 인간애인 인애로 귀착된다.

일각에서는 공자에게 있어서 인애(仁愛)란 통치계급의 일로서 통치대상인 노동자를 어떻게 지배, 복속시키느냐의 문제일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기도 하다. 충서(忠恕)란 노예소유주인 귀족들 사이의 충서이지 노예소유주와 노예 사이의 충서는 결코 아니며 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이는 오로지 착취제도와 착취자 옹호하는 것일 뿐 기소불욕 물시어인의 의미와는 거리가 먼 것이라는 것이다. 물론 우리 인류의 역사는 착취계급이나 지배계급들이 계급모순을 은폐하고 백성들을 고분고분하게 만들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는 부정적인 지나치게 강조한 본 것이 아닌가 한다.

앞서(공자와 애덤 스미스)에서도 언급한 바가 있지만 애덤 스미스도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 그는 인간의 공감능력에서 사회질서 유지의 근거를 마련했다. 인간은 이기적 존재일지도 모르지만 공감을 통해서 타인으로부터 인정을 받으려고 하는 타고난 도덕감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이기심을 누르고 더 높은 도덕적 차원의 판단을 할 수 있어 사회의 질서가 유지된다고 주장했으며, 그것을 설명한 것이 바로 《도덕감정론》이다.

아무튼 당시 유럽 특히 영국에서는 공자의 가르침은 기독교를 탈피하여 능히 도덕적 시민적 삶의 기반이 될 수 있는 합리적이고 자연적인 종교로 받아들여졌다.

주해----------------

①프랑수아 케네

프랑스의 경제학자로 중농학파의 학문적 시조이다. 루이 15세와 그의 애첩 뽕빠도르의 시의(侍醫)다. 중상주의(merchantilism)에 반대하고 문자 · 화폐와 더불어 3대 발명의 하나라고까지 일컬어지는 유명한 경제표를 창안했다. 중상주의적 통제나 비경제적인 조세제도를 폐지하고 자유방임 정책과 지주계급의 지대수입에만 과세하는 이른바 단세론을 내세웠다. 케네의 이러한 업적은 애덤 스미스에 의해서 성취된 경험적 자연법사상 형성에 지주가 되었다.

②마테오 리치

이탈리아의 선교사. 예수회 소속으로 중국 광둥성에서 예수회의 첫 교회인 선화사(仙花寺)를 건립하고 선교활동을 했다. 자오칭의 선화사와 베이징의 남당(南堂)을 비롯하여 여러 곳에 교회당을 건립하였으며, 많은 사람들을 천주교로 개종시켰다.

서양에서 발행된 최초의 《사서》 역본을 내었고 《천주실의》 《산해여지전도(山海與地全圖)》, 《곤여만국전도』(坤與萬國全圖)》등을 간행했다. 1610년 5월 11일 사망할 때까지 약 10년 동안 베이징에서 활동하였다.

마테오 리치는 중국에 27년간 체류하면서 동서문명 교류에 큰 족적을 남겼다. 그는 ‘배불차유반리학(排佛借儒反理學)’, 즉 불교를 배척하고 유교를 차용하며 성리학을 반대하는 사상을 표방하였다.

또한 리치는 서방의 근대적인 과학기술, 즉 서학(西學)을 폭넓게 동방에 전파하였다. 그는 중국의 지리 · 물산 · 예술 · 과학 · 정치 · 풍습 · 예절 · 종교 등 각 방면의 사정을 유럽에 소개하였다. 그는 유럽에서 근세 중국학 개척자의 한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③프랑소아 페넬롱

프랑스의 종교가 겸 소설가. 왕세손 선생으로 재임했다. 그의 대표작인 소설 《텔레마크의 모험》은 왕세손 교육을 위해 쓴 것인데, 고전주의 문학의 걸작인 동시에 거기에 전개되는 루이 14세의 전제(專制)에 대한 비평과 유토피아적인 이상사회의 기술 등은 계몽사상 형성에 일익을 담당했다,

④커드워쓰

영국 케임브리지 플라톤학파의 철학자. 1654년 크라이스트 칼리지 학장에 취임했다. 신비적 ·이성적인 플라톤주의의 입장에서 홉스, 스피노자로 대표되는 유물적 무신론을 논박하여 신의 영원한 지성을 옹호했다. 결정론에 대해서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확증하였다. 주요저서로는 《우주의 진지적(眞知的) 체계》가 있다.

⑤영국의 논리학자. 아일랜드 출신. 글래스고 대학 교수. 샤프츠베리의 도덕감정론을 적극적으로 계승하고 도덕상의 선악을 판정하는 것은 인간의 타고난 도덕 감각이라 하여 감각에 의한 직각(直覺)을 기초로 하여 감정 논리학을 폈다. 이 견해는 공리주의로 연결되며 애덤 스미스로부터 존경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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