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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과 중국이 조화를 이루는 그런 교류를 통해 상호 발전하자공자와 라이프니츠 2
윤진평 (본지 회장)  |  yjp005@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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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1.23  11:4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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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니츠는 유럽과 중국이 조화를 이루는 그런 교류를 통해 상호 발전할 것(사실은 유럽의 발전이지만)을 바랬다. 그는 신과 자연, 의 조화로운 통일 그리고 선과 악 등을 화합적으로 통섭하려는 시도를 했다.

라이프니츠는 유럽 문명에 대해 ‘사유의 철저함과 이론적 훈련, 비물질적인 사물들에 관한 지식 및 논리학과 형이상학 외에도 질료적인 것의 이해를 통하여 추상화시킨 형식의 파악, 즉 수학적인 것에 서는 뛰어나다’고 보았다.

그는 중국이 유럽보다 수학적으로 앞서지 못하는 이유는 “학문의 비밀은 수학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데, 중국인들은 수학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관점은 뉴턴과는 별도로 미적분학의 방법을 창안하는 등 뛰어난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인 점도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라이프니츠는 중국 문명의 우월성에 대해서도 인정하고 있다.

그는 중국에 대해 “‘물리(경험)적 세계에 관한 비밀스러운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중국인들은 관찰에 뛰어난 데다 중국 문명은 실천적인 철학의 면에서 유럽 문명보다 월등하다”고 인정한다.

그러면서 그는 “인간의 삶과 일상적 습속에 적용되는 윤리와 정치의 가르침에서는 (중국인이) 유럽인을 능가한다”고 말한다.

라이프니츠는 이런 이유로 “당시 유럽이 직면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증가하고 있는 도덕적 타락의 상황에서 실천 철학의 적용과 보다 이성적인 삶의 방식을 그들에게 배우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기독교적 세계관에서는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다. 아니 더 넓은 세계관을 지니고 있었다 하더라도 쉽게 말할 수 있는 처지가 못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라이프니츠는 이렇게 말하며 은근히 기독교 신을 찬양한다.

“하지만 중국인은 참다운 도덕적 삶에는 완전하게 도달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삶은 하늘의 은총과 기독교의 가르침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라이프니츠의 이러한 행동은 당시 중국 문명을 찬양했던 프로이센 할레대학의 볼프총장이 쫓겨나는 등의 사회적 분위기와도 연관돼 있다. 잠시 볼프의 연설을 들어보자.

“공자의 언행은 그리스 철학과는 비교할 수 없는 도덕철학의 보고다. 공자는 덕과 학식이 뛰어났고 신의 섭리에 의해 중국에 선물된 사람이었다. 그는 그리스도가 유럽에서 받는 것과 똑같은 대우를 중국에서 받는다.”

“공자 훨씬 이전에 중국의 국가는 최선의 법제도로 빼어났다. 그 이유는 군주들이 말은 물론이고 모범적인 행동으로도 백성들에게 최고 완전성의 준칙을 전했기 때문이다. 또한 도덕 교사와 교육자들은 – 천자 · 제후 · 대부들만이 아니라 하층 백성의 – 자식들을 어릴 적부터 좋은 도덕으로 이끌었고 어른들에게는 선악의 인식을 강화시켰기 때문이다. 군주와 그 신하들은 덕의 명성을 놓고 서로 경쟁했다. 중국의 옛 황제와 제후들은 말하자면 동시에 철학자들이었다. 그러므로 – 플라톤의 명제에 따라 – 철학자들이 다스리고 제후들이 철학하는 곳에서 국가가 행복하다는 것이 뭐 그리 황당한 일이겠는가?”

“공자는 중국적 지혜의 창조자가 아니라 복원자다! 이 철학자는 새로운 준칙을 만들지 않았을지라도 공허한 명예욕에 유혹당하지 않고 백성의 행복과 복리를 위해 노력함으로써 자기의 재능을 전적으로 발휘했다.”

“우리가 그를 신이 우리에게 내려준 예언자나 스승으로 존경하는 한에서 오늘날도 공자는 모세가 유대인에게, 마호메트가 터키인에게, 심지어 그리스도가 우리들에게 간주되는 것과 정확히 똑같이 중국인들에게 간주된다.”

라이프니츠는 중국 문명과 유럽 문명이 지닌 역동성과 다양성, 수천년 축적된 역사와 문화가 교류를 통해 성장하면 인류 보편성의 법칙을 끌어낼 수 있다고 보았다. 물론 그것은 다른 문명을 그대로 이해하고 수용하지 못하고 자신의 시각 내에서 분석하고 해석하는 식의 기독교 정신이긴 하지만 보편적 정신을 바탕으로 동서양 문명은 통일성을 지향해 나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라이프니츠는 그러나 많은 부분에서 중국을 잘못 바라보고 있었다. 가령 유학과 성리학(신유학)을 구분하지 못했다. 예를 들어 공자가 리(理)와 태극을 가르쳤다는 등의 이야기가 바로 그런 것이다.

라이프니츠는 또 리의 개념이 神 개념과 유사하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완전한 오류다.(중국 성리학자 정호는 이가 자연법칙을 가리키며 또 정치적 질서 및 윤리도덕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하였다.)

라이프니츠는 “신이 세계를 창조한 방식대로 리는 자신의 완전한 본성에 의해 몇몇 가능성들 중에서 가장 적합한 것을 선택해 산출해 왔고, 자신 이외의 나머지 모든 것을 생겨나게 하는 자연적 경향 때문에 이러한 방식으로 기 또는 질료를 산출해왔다. 리는 사물들에게 예정 조화(豫定調和)된 질서를 포함한 능력을 부여하는데, 이때부터 만물은 그 자신의 자연적 성향에 의해 계속 앞으로 나아간” 다며 리를 예정조화를 창조한 신으로 상정한다.(그에 의하면 “창이 없는” 모나드를 상호 관련 짓고 세계의 통일을 형성하는 것은 신에 의한 '예정조화'다).

또 세계가 신의 예정조화이며 최선의 질서를 얻고 있다고 보는 것에서, 그리고는 이런 중국의 철학이 고대 그리스인의 철학보다 훨씬 더 기독교 신학에 가깝다”고 주장했다.

아무튼 라이프니츠는 “리와 태극은 모두 신을 표현하는 다른 말일 뿐이다. 보편적 정신은 그 자체로 보면 리 혹은 질서라 부를 수 있고, 창조물 안에서 작용을 하면 태극이라 불리고, 하늘을 다스리는 창조의 원리를 가리켜 상제라 불린다”고 주장했다. 리란 ‘어떤 것이 그것으로 존재할 수 있는 이치요, 본래성’이라는 소박한 주장을 신과 연계시키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라이프니츠는 “생성과 소멸의 정신만을 인정하는 유학자들을 이단으로 여겨야 하며, 살아있는 정신들이나 제사를 받는 정신들을 인정하는 상징적이고도 공적인 유교의 교설에 의지해야만 한다”는 기독교적 세계관을 죽을 때까지 고집했다.

주해-----------------------

①제일 질료(mareria prima)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기본 개념으로 '형상'과 '질료'가 있다. 우리와 주변 세계를 인식하고 현상의 목적이나 원인을 알아가는 데에 있어서 핵심적인 두 축으로 사용되는 개념이다. 말하자면 질료는 '무언가로 만들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개체이고 형상은 '질료로써 만들어진 지금의 형태'라고 할 수 있겠다. 즉 형상에 대응하는 개념이다. 예컨대 집의 구조를 형상이라고 한다면, 재목(材木) 등이 질료이다. 질료는 형상에 의해서 한정되는 것이며, 형상이 실현될 가능성으로 간주되고 있다. 목재는 집에 있어서는 질료이지만, 목재로서의 형상도 지니고 있다. 이와 같이 양자의 관계는 상대적인 것이다. 그는 전혀 형상을 갖지 않는 질료를 상정하여, 그것을 제일 질료(第一質料)라고 불렀다. 이 개념은 스콜라학파에 계승되었으며, 근세에 이르러 그것은 한편으로는 물질의 개념으로 진화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칸트 이후 인식의 형식에 의하여 가공되는 소재(素材)의 뜻을 갖게 되었다.

*참고자료: 황태연의 <공자와 세계>, 이응구의 <라이프니츠가 만난 중국> >. 퇴계의 <성학집요>, 이태영의 <조선성리학>, 김성명의 <아리스토델레스의 ‘질료와 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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