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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뒷이야기; ② 근대 과학과 종교
노인영 논설위원  |  nohproble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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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1.08  08:5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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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세이건이 안내해준 코스모스(Cosmos). 우주의 질서를 뜻하는 그리스어로, 카오스(chaos)와 대응하는 개념이기도 하다. 그는 같은 이름의 책에서 마르틴 루터가 코페르니쿠스를 비웃는 이야기를 전한다.

루터는 코페르니쿠스를 가리켜 ‘벼락출세한 점성술사’라 일컬었다. 그러면서 “이 바보가 천문학이라는 과학을 통째로 뒤엎으려 한다. 그러나 성서에 분명히 쓰여 있듯이 ‘여호수아가 멈추라 명한 것은 태양이지 지구가 아니다’라고 했다.”

이렇듯 특히 근대 과학자에게 신앙은 어떤 형태로든 관계를 정립하고 넘어가야 할 큰 화두였다. 당시 그들의 사고체계를 비롯한 삶 전반이 신앙과 불가분의 관계였기 때문이다.

1600년 자신의 우주관을 철회하지 않아 화형당한 브루노는 도미니카 교단의 사제였다. 그리고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이, 케플러, 뉴턴 모두 신실한 신앙인이었다.

유일 신앙의 태동, 유대교의 신 ‘야훼 Yahweh'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존재하게 하는 자’라는 의미다. 그리고 이 ‘조물주’ 개념은 그대로 기독교 신앙에 녹아들었다.

따라서 당시 자연철학자(과학자)가 과학을 한 이유는 우주에 새겨진 신의 질서를 찾겠다는 소명의식의 발로였다. 그러니 그들이 발견한 관찰 결과와 성경 해석이 엇갈렸을 때 숱한 번민이 뒤따랐을 것이다.

인류의 패러다임을 바꾼 기막힌 발상을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 한다. 그러나 그도 행성이 원형 궤도를 그리지 않는다는 가설과 관련,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고 단언했다. ‘최상의 모습으로 창조된 신의 피조물’이 감히 불완전하게 일그러졌다고 여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케플러는 화성의 원형 궤도에 해당하는 예측값에서 8분의 오차를 달리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16년 연구, 3년이나 걸친 분석 끝에 결국, 행성의 궤도가 타원형임을 인정해야 했다.

그는 신학을 공부하던 중 수학의 재미에 빠져 목사 대신, 중등학교 수학교사가 된 인물이다. 인류사 최초로 천체 운동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면서 신비주의를 배제한 그는 최초의 천체물리학자로 불린다. 그러나 그는 루터파로부터 파문당했다.

갈릴레이는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이 성서와 모순되지 않는다고 교회를 설득하려 했다. 그는 자신의 설득이 통하리라 자신했다. 망원경을 통해 목성의 위성에 관한 관찰 결과를 직접 눈으로 확인시켜 주려 했다. 그 위성들은 지구를 중심으로 돌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교회는 외면했고, 갈릴레이는 과학적 토론이 종교적 영역으로 옮겨가는 상황에 분노했다. 결국, 갈릴레이가 1633년 2월 종교재판에서 가택연금 형을 받는다. 이로써 교회와 과학은 서로 돌이킬 수 없는 각자의 길로 향했다.

여기서 질문이 생긴다. 왜, 교회는 모든 것을 다 직접 설명하고 판단하려 했을까? 성서는 신앙의 기반이다. 라틴어로 된 성서는 극히 소수만 읽을 수 있었는데, 교회는 “성서를 해석할 처음이자 마지막 권한을 지닌 것은 교회뿐”이라고 못 박았다.

   
 

좀 더 들어가 보자. 성서의 기반을 이루고 있는 글, 즉 문자는 인간의 위대한 발명이다. 금속활자가 발명된 1450년 직전 유럽에 흩어져 있던 책이라고 해야 겨우 수만 권의 필사본에 불과했다.

그러나 500년 후 전 유럽에서 약 1,000만 권의 책을 볼 수 있게 된다. 지식은 대중의 것이 되었다. 루터의 종교 개혁이 성공한 결정적인 요인도 성경에 대한 신자들의 주관적 판단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으로 한 번 활자화되면 번복이 어려운 것이 문자의 한계성이다. 그래서 교리가 경직된다. 성경은 예수가 쓰지도, 그분에게서 직접 들은 이야기도 아니다. 한 명이 아니라, 4명에 의해 쓰였다.
또한 어휘가 빈약한 라틴어 성경이 각국 언어로 번역되는 과정을 거쳤다. 에드워드 기번처럼 조작했다는 혐의를 디밀지 않더라도, 적어도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의미다.

한 발 양보해서 그분이 한 말을 다 적시하지 못할 수도 있다. 진화론, 이 중대한 신의 메시지를 성서 저자들이 놓친 것은 아닐까? 성경은 진화에 전혀 대비하지 않았다.

과학은 진리가 아니다. 언젠가 새로운 과학에 의해 수정되어야 할 현재의 사실일 뿐이다. 따라서 과학은 영원불면의 진리를 전하는 종교의 위상을 감히 넘볼 처지에 있지도 않다.

그러나 시어도어 젤딘의 말대로 ‘종교가 과학과 같은 링에 오르기로 하면서부터’ 몰라보게 달라졌다. 시가 산문으로 변했다. 즉, 교회는 성경을 메시지가 아니라 명확하게 서술하려는 데 따른 위험성을 인식하지 못했다.

그랬더라면, 과학적 사실을 인간의 오성(悟性)에 의한 결론, 즉 ‘이단’-이단(heresy)이란 말은 원래 선택을 뜻하는 말로 비난의 의미는 없었다. 그러다 신학자들에 의해 점차 논쟁이 비난으로 변질하였다- 혹은 ‘신성 모독’으로 재단하는 데에 좀 더 신중했으리라.

아담과 이브가 배꼽이 있느냐는 질문까지 답변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으리라. 또한 어셔 주교가 성경을 분석하여 기원전 4000년 10월 27일 오전 9시에 이 세상이 창조되었다는 말을 결코 입에 담지 않았으리라.

불일치는 결코 질병이 아니다. 칼 세이건은 자유로운 탐구가 곧 과학의 목적임을 강조한다. 덧붙여 그는 “마음에 들지 않는 생각을 억압하는 일이 종교나 정치에서는 흔히 있을지 모르겠지만, 진리를 추구하는 이들이 취할 태도는 결코 아니라”고 비판했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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