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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저런이야기 > 백천 조선왕조 베스트셀러 <논어>
A에게서 화가 난 것을 B에게 옮기지 않는다제74화(話) 호학(好學)
김세현 논설위원  |  ks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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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1.13  07:2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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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효종 즉위(1649년 淸순치(順治) 6년)년 8월 28일 乙卯

영의정이 관용을 베풀고 언로를 열 것을 당부해 이재와 홍처윤을 다시 서용하다.

영의정 이경석이 상차하기를, <전략>

옛날에 육지(陸贄)는 나라가 변란을 당했을 때에 반복하여 나아가 간하여, 강공보(姜公輔)가 임금에게 미움 받은 것을 변론하고 형건(邢建)이 의심을 받는 것을 분별하였는데, 그가 올린 주장(奏狀)에 말하기를 ‘국가의 모든 일을 영도하려면 반드시 먼저 마음을 비워야 하고, 많은 사람의 진정을 살피려면 반드시 먼저 뜻을 성실하게 해야 합니다. 마음을 비우지 않으면 사물에 혹 막히게 되고 뜻을 성실히 하지 않으면 모든 사람이 의심스러워지는 것입니다.’ 하였고, 또 말하기를 ‘공자께서 “분함을 옮기지 말고, 남들이 자신을 불신할 것이라고 미리 억측하지 말라.”고 하셨으니, 이는 함부로 감정을 부려서 중도를 잃게 되는 것을 두려워해서가 아니겠습니까.’ 하고, 또 말하기를 ‘하늘처럼 덮어주고 땅처럼 감싸주어야 하니, 면류를 드리우고 귀막이솜을 늘어뜨려서 일부러 자세히 들리고 보이는 것을 가리고, 하자를 숨겨주고 병통을 감추어 주며, 포용하기에 힘쓴다면, 위엄을 보이지 않아도 사람들이 우레와 천둥처럼 경외할 것이고 밝음을 쓰지 않아도 사람들이 해와 달처럼 우러를 것입니다.’ 하였으니, 참으로 좋은 말입니다.

孔子曰: 不遷怒, 不億不信.

2)효종 1(1650년 淸순치(順治) 7년)년 4월 10일 癸巳

우의정 조익이 유계 등의 상소를 잘못 알고 있음을 아뢰었으나 듣지 않다.

우의정 조익이 상소하기를,

"삼가 조석윤(趙錫胤)의 상소에 대한 비답을 보니, 유계가 두 번의 상소를 하였다고 하셨습니다. 신이 삼가 듣건대 유계는 한 번의 상소만 하였지 두 번째의 상소는 없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그 두 번째 상소의 말을 필시 유계가 올린 것이 아닐 것입니다. 신의 생각에는 전하께서 상중이라 정신이 없으시던 때, 다른 사람의 상소를 유계의 상소로 여기신 게 아닌가 싶습니다. 유계의 상소는 전례(典禮)를 일반적으로 논한 것에 불과하고, 비방하고 폄하한 뜻은 없었습니다. 심대부의 상소도 신은, 전례만을 논하였고 선왕을 비방하고 폄하한 뜻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은 본래 서로 친한 사이가 아닌데, 친한 사이가 아닌 사람끼리 서로 의논해서 군부를 비방하겠습니까. 공자가 ‘남이 나를 속일 것이라고 미리 짐작하지 않고, 남이 나를 불신할 것이라고 억측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성인의 이 말씀이 지극히 충후하지 않습니까.

전하께서는 단지 일찍이 그 상소에 좋지 않은 말이 있음을 보셨기 때문에 엄히 질책하셨으나, 이제 그 상소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아셨으니, 확실하게 의혹을 푸셔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인의 허심탄회하고 크게 공평하여 마음을 비우고 사물을 대하는 도리입니다." 하였는데, 상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孔子曰: "不逆詐, 不億不信

이 말은 옹야(雍也)편 2장의 말로

哀公이 問 弟子孰爲好學이니잇고? 孔子對曰 有顔回者好學하여 不遷怒하며 不貳過하더니 不幸短命死矣라 今也則亡(無)하니 未聞好學者也니이다.

(애공(哀公)이 “제자 중에 누가 배움을 좋아합니까?” 하고 묻자 공자 대답 曰 “안회(顔回)라는 자가 배움을 좋아하여 노여움을 남에게 옮기지 않으며, 같은 잘못을 두 번 다시 하지 않았는데, 불행히도 명(命)이 짧아 죽었습니다. <호학자(好學者)가> 지금은 없으니, 배움을 좋아하는 자를 아직 듣지 못했습니다.)

이 문장에 주자(朱子)가 주해(註解)하기를

천(遷)은 옮김이요, 이(貳)는 다시 함이니, A에게서 화가 난 것을 B에게 옮기지 않고, 전에 잘못한 것을 다음에 되풀이해서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명(命)이 짧다는 것은 그가 32세에 죽었기 때문이며, 이때 공자는 71세로 공자가어(孔子家語)에 안회(顔回)는 공자 보다 40살이 적고, 29살에 이미 백발이 되었고, 31세에 요절했다. 고 했다.

정이천(程伊川)이 말하길 안자(顔子)의 노여움[화]은 상대방에게 있었고, 자신의 감정에 있지 않아서 옮기지 않았으며, 선(善)하지 않음이 있으면 일찍이 알지 못한 적이 없고, 알았으면 일찍이 다시 행한 적이 없었으니, 잘못을 다시 하지 않은 것이다. 라고 했다. 즉 기뻐하고 노여워함이 자신의 감정에 있지 않고 상대방의 행한 일에 있으며, 혈기(血氣)에 있지 않으므로 옮기지 않는 것이라 고 했다.

공자의 제자 가운데 6예(六藝)에 통달한 자가 70여명이라고 했는데, 공자께서 유독 안자(顔子)만이 배움을 좋아한다고 칭찬했는데, 그럼 그 안자(顔子)의 배움은 어떤 것일까?

정이천(程伊川)은 배워서 성인(聖人)에 이르는 방법이었다. 고 대답하면서 그럼 배우는 방법은 어떻게 하는가? 라는 구체적인 질문에 대해서도 천지(天地)가 정기(精氣)를 쌓아 만물을 낳았는데, 오행(五行)의 빼어난 정기(精氣)를 얻은 것이 사람이니, 그 본체는 참되고 고요하다. 미발(未發)했을 때에는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의 오성(五性)이 구비되어 있다가 형체가 이미 생기고 나면 외물(外物)이 그 형체에 접촉되어 감정이 움직인다. 마음이 움직여 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欲)의 7정(七情)이 나오니 이 감정이 이미 치성하여 더욱 방탕해지면 그 본성(本性)이 해롭게 된다. 그래서 선인(先人)들은 정(精)을 절제하여 중도(中道)에 합하게 하고, 마음을 바루어서 본성(本性)을 기르게 한다. 그러나 반드시 먼저 마음을 밝혀서 갈 곳을 알아야 하니, 이렇게 한 뒤에야 힘써 행하여 도(道)에 이르기를 구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안자(顔子)가 예(禮)가 아니면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행하지도 않고, 잘못을 다시 되풀이 하지 않음과 같은 것은, 좋아함이 독실하고 배움에 그 방법을 얻은 것이다. 그러나 안자(顔子)가 결코 성인(聖人)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한 것은 지킨 것이 공자처럼 저절로 화(化)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라고 했다. 즉 이 말을 환언하자면 안자(顔子)는 인(仁)의 개념이 한마음이란 것을 확실히 알았기 때문인데, 인생에서 가장 절실한 인약(仁藥)을 먹는데 몰두하는 공부를 했다는 말이다. 그래서 공자처럼 그 결실을 보지 못하고 요절(夭折)을 했기 때문에 공자께서 더욱 그의 죽음을 애통하신 것이다.

이 첫 번째 기사의 영의정인 이경석의 말 중에 육지(陸贄)의 이야기는 한원집(翰苑集)에 실려 있는데 당 덕종(唐德宗)이 주자(朱泚)의 반란을 만나 봉천(奉天)으로 파천하였을 때, 아끼던 공주가 그곳에서 사망하자 탑을 쌓아 그곳에다 후장(厚葬)하려 하였다. 당시 간의대부인 강공보가 부당함을 주장하여 덕종이 미워하자 육지가 강공보를 변호하였고, 반란군에서 도망해온 형건(邢建)이 적중의 형세를 장황하게 말하자 덕종은 그가 반란군의 염탐꾼이 아닌가 의심하여 박대하였는데 육지가 임금의 포용하는 도리를 역설하였다. 는 고사에서 나라가 어려울 때 반복하여 간(諫)하여 임금이 바른 판단을 하도록 한다는 말로 쓰인다.

두 번째 기사는 효종 1년 4월 우의정 조익이 유계 등의 상소를 잘못 알고 있음을 아뢰었으나 효종이 듣지 않았다.

우의정 조익의 상소 요지는 조석윤(趙錫胤)의 상소에 대한 비답을 보니, 유계가 두 번의 상소를 했다고 했지만 유계는 한 번만 상소했다고 했으니, 이는 전하께서 상중이라 정신이 없으시던 때, 다른 사람의 상소를 유계의 상소로 여기신 게 아닌가 싶습니다. 유계의 상소는 전례(典禮)를 일반적으로 논한 것에 불과하고, 비방하고 폄하한 뜻은 없었으며 공자가 ‘남이 나를 속일 것이라고 미리 짐작하지 않고, 남이 나를 불신할 것이라고 억측하지 않는다.’고 했으니, 성인의 허심탄회하고 크게 공평하여 마음을 비우고 사물을 대했듯이 확실하게 의혹을 푸셔야 합니다. 라고 한 상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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