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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뒷이야기; ③ 과학과 종교의 병진(竝進)
노인영 논설위원  |  nohproble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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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1.19  08: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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쇄국 일본에서 일어난 포르투갈 예수회 소속 신부의 파교(破敎)를 다룬 소설, 엔도 슈사쿠의 <침묵>은 드라마틱하다. 주인공 로드리고 신부는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의 죽음을 면하게 하려면, 배교해야 했다. 그리고 그것은 성화를 밟는 행위로 갈무리한다.

그 마지막 혼돈의 갈림길에서 성화 속 그분 목소리가 들려왔다. “밟아도 좋다. 네 발의 아픔을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밟아도 좋다. 나는 너희에게 밟히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고, 너희의 아픔을 나누기 위해 십자가를 짊어진 것이다.”

   
 

이렇듯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다. 그리스도는 자신을 배반한 유다에게도 “가라. 가서 네가 할 일을 이루어라”고 했다. 이런 맥락에서 아인슈타인은 “나는 자신을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신의 창조물을 심판한다는 신을 상상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으리라 짐작해본다.

성서의 내용과 자신이 발견한 과학적 사실이 충돌할 때, 신앙인으로서 과학자의 입장은 곤혹스러워진다. 다행히 독실한 종교인이었던 두 명의 위대한 물리학자가 이 질문에 훌륭한 대안을 제시했다.

맥스웰은 뉴턴, 아인슈타인과 급을 같이 한다. 그는 신의 진정한 실체는 오직 성경에서만 찾을 수 있다고 믿었다. 또 여느 신학자만큼이나 성경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과학과 종교 사이의 공통 기반을 세우려는 목표로 운영되던 빅토리아 협회의 가입 권유를 거절했다.

1875년 그 이유를 설명했다. “누군가가 과학과 종교성을 일치시키려는 노력 끝에 성취한 결과는 본인 외 그 누구도 의미를 갖지 말아야 합니다. (...)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 과학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패러데이나 뉴턴과 마찬가지로, 맥스웰 역시 신이 우주를 창조했다고 믿었다. 따라서 물리 법칙은 곧 신이 만든 법칙이며, 모든 과학적 발견은 신의 거대한 설계를 이해하는 과정이라고 여겼다. 그러면서도 그는 과학적 연구에 있어서 실험으로 뒷받침하지 않은 이론은 임시적인 것으로 치부했다.

그는 어떻게 물질적 증거도 없이 절대적 믿음을 요구하는 신앙과 과학을 양립할 수 있었을까? 답은 성경 해석 방법에 있었다. 신이 이레 만에 세상을 창조했다는 <창세기>의 설명을 진리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고 여겼다. 은유라는 거다. 다른 구절 역시 메시지로서 존재했다. (낸시 포브스와 배질 마흔 공저 <패러데이와 맥스웰> 참조)
  
다른 한 명이 조르주 르메트르이다. 그는 벨기에의 사제임에도, 과학 저널 <네이처>에 “양자이론의 관점에서 본 세계의 시작”이라는 짧은 논문을 발표했다. 그 역시 자신의 과학적 제안과 종교를 떼어놓기 위해 애쓴 과학자다.
 
1927년 그는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이 우주가 팽창을 예측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리고 2년 뒤 미국의 두 천문학자 헨리에타 리비트와 에드윈 허블 덕분에 그의 직관이 확증된다.

그러나 우주의 팽창과 관련한 공로는 허블에게 돌아갔다. 삼가는 성격인 그는 자신의 공을 내세우지 않았다. 다만, 아인슈타인을 만나 ‘우주가 정적(靜的)이지 않다’고 반박했을 뿐이다.

아인슈타인은 처음에 르메트르의 지적을 거부했다. 본질적인 면에서 차이가 있지만, 아인슈타인도 우주를 통괄하는 질서로서 신을 믿었다. 범신론(汎神論)이라 한다.

“내게 신이란 우주 만물에 대한 나의 경외감이다. 나는 신의 생각을 알고 싶다. 나머지는 세부적인 것에 불과하다. 나는 우주의 원리가 아름답고 단순한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종교 없는 과학은 절름발이며, 과학 없는 종교는 장님이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정적인 우주’를 믿었을지 모른다. 그는 르메트르에게 “당신의 계산은 옳지만, 당신의 물리학은 형편없소”라고 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결국, 르메트르가 옳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르메트르는 새로운 우주론의 선구자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우뚝 섰다.

이번에는 르메트르가 교황 비오 12세에게 (간접적으로) 신중해지길 요청했다. 우주가 빅뱅에서 생겨났다는 생각이 받아들여지는 분위기가 확장되던 1951년 11월 12일, 교황은 연설을 통해 ‘빅뱅 이론이 창세기의 이야기를 확증한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르메트르는 종교와 과학을 이런 식으로 섞는 것이 터무니없는 일이라고 확신했다. 성서는 물리학에 대해서 모르고, 물리학은 하느님에 대해 모른다는 입장이었다.

다행히 르메트르의 설득이 통했다. 비오 12세는 다신 이 문제를 공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물론 이번에도 그가 옳았다. 오늘날 많은 이가 빅뱅 이전에 또 다른 우주가 존재했을 가능성에 관해 이야기한다.

교황은 자칫 난처해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교황의 말은 격이 다르다. 하느님과 직접적인 관계를 가진 유일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르메트르였기에 아인슈타인이나 교황에게 올바른 방향을 제시할 수 있었다. (카를로 로벨리의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참조)

   
* 뱅크시의 그라피티 <검문>은 반전이 유쾌하다

오늘날 어떤 종교이든 ‘과학적’이라는 평가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 거듭 강조하지만, 가고자 하는 방향이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주에 관한 인류의 이해를 넓혀가는 과정은 이제 과학에 일임하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신앙인은 정답에 연연하기보다, 위대한 질문만으로 어깨를 으쓱해도 괜찮을 듯싶다. 본질에 관한 명상을 놓지 않되, 병들고 가난하고 피곤한 이웃을 위로하고 치유하며, 모든 생명체에 대한 사랑에 집중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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