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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동물이 신이 되는 눈속임의 세계이집트 기행 ②신 그리고 신전
노인영 논설위원  |  nohproble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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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2.20  09:4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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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23일 비 온 후 카이로의 새벽 달. 비는 행운을 상징한다. 그만큼 태양이 뜨겁고, 구름도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때는 알지 못했다. 태양이 뜨고 지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돌고 있다는 사실을. 몸이 흔들리거나, 공중 높은 곳에서 돌을 떨어뜨렸을 때 그 위치가 바뀌었더라면 눈치챘을 것이다. 그때는 이 또한 알 수 없었다. 세균이 질병을 옮긴다는 사실을. 눈으로 그 정체를 직접 확인했다면, 그것이 악마의 장난이 아님을 알고 주술에 의지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집트인은 어쩌지 못하는 자연 현상이라 하여 그냥 바라만 보고 있지 않았다. 계속 관찰했다. 1460년마다 강의 범람과 일출과 밤 하늘에 시리우스가 동시에 출현한다는 사실까지 밝혀냈다. 그럼, 이런 인과(因果)는 어떻게 생기는가? 마침내 결론을 내렸다. 신이 있다고. 선과 악이 공존하는 신들로 인해 비롯된 조화라고 믿었다. 이렇게 신이라는 개념이 탄생했다.

이집트 역사에는 무려 2,000여 신이 탄생했다고 한다. 왜 그래야만 했을까? 만물의 변화에 대한 궁금증이 늘어날수록 신도 덧붙여지지 않았을까? 아리스토텔레스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지구중심설)을 지지했다. 그는 새로운 별의 수상한 움직임을 설명하려다 보니 지구를 중심으로 도는 천구(天球)의 수가 최초 26개에서 80개까지 늘였다. 그리고 인류는 그걸 1,500년 간 철썩 같이 믿었다. 이와 맥을 같이 하는 현상이리라. (그렇다고 해도 너무 많다. ㅎㅎ)

이집트는 ‘신들의 나라’다. 그리고 그 신들은 동물과 연결되어 있다. 때론 동물 자체로, 때론 인간의 몸에 동물의 머리를 붙여 표현했다. 신 중의 왕 아몬(아멘)은 숫양, 왕권 수호의 신 호루스는 매, 지혜의 신 토트는 따오기, 죽은 자의 신 아누비스는 자칼 등등. 물론 부활의 신 오시리스는 몸도 머리도 사람 모습이며, 사랑과 출산의 신 하토르는 귀만 소의 형상으로 옮기기도 했다.

① 카르나크 신전과 룩소르 신전

   
▲ 두 번째 탑문 앞에는 람세스 2세 입상이 보인다. 일직선 상으로 멀리 지성소(至聖所, 파라오만이 접근 가능한 신성한 곳)가 있다.

-  약 3,500년 전 아멘호테프 1세에 의해 룩소(Luxor, 테베)에 건설한 이집트 최대의 신전이다. 첫 번째 탑문 앞 스핑크스는 사자의 몸에 숫양의 머리를 하고 있다. 아몬(아멘) 신의 제사를 모시던 곳임을 알 수 있다. 아몬(아멘) 신전 열주실(큰 기동 홀)은 15~23m 높이의 거대한 돌기둥 134개가 두 줄로 늘어서 있다. 열병식(閱兵式)하듯.

- 신전 내 오벨리스크는 투트모세 1세(오른편 높이 21.8m, 무게 130t)와 그의 맏딸 하트셉수트 오벨리스크( 높이 30m,, 무게 323t))가 있다. 모래 위에서 지지대 없이 수천 년을 지탱할 수 있게 세우는 공법은 오늘날에도 흉내내기 어렵다. 동간 난 하트셉수트 오벨리스크 한 짝은 그녀가 섭정할 때 20년간 연금 상태로 지내야 했던 의붓아들 투트모세 3세가 신전을 덮어버리면서 생긴 참상이다. 오벨리스크 본체 직사각형이 세워놓고 보는 것과 달리 폭이 일정한 것이 의외다.

- 카르나크 신전 부속인 <룩소르 신전>은 남쪽으로 약 3k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신왕국 때 두 신전은 스핑크스 길로 이어져 있었다고 하며, 아멘호테프 3세가 기초하고, 람세스 2세가 신전답게 바꿔놓았다.

② 에드푸의 호루스 신전과 덴데라 신전

   
▲ <에드푸의 호루스 신전> 입구에는 호루스를 상징하는 매 조각상(화강암)과 벽화. 상하 이집트 통일 왕관을 쓰고 있다.

- 에드푸 신전은 이집트 내에서도 잘 보존되어 있는 신전 중 하나이다. 모래에 덮혀 있었기 때문이다. 매의 신 호루스를 위해 지은 신전 벽화에는 호루스와 세트(하마 형상)의 전쟁 과정이 묘사되어 있다. 지성소에는 황금을 입힌 나무 호루스 상과 화강암 안치대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 ‘이집트의 비너스’로 불리는 호루스의 아내 하토르를 위해 지은 덴데라 신전 탑문을 지나면 하토르 기둥이 서 있다. 그리고 벽화에는 하토르가 암소의 뿔 사이에 태양 원반의 왕관을 쓰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클레오파트라 7세와 카이사르 사이에서 낳은 아들 카이사리온  돋을새김이다.

③ 콤옴보 신전 과 아시스 신전

- ‘황금 언덕’이란 뜻의 <콤 옴보 신전>은 룩소와 아스완 사이에 위치한다.
신전이 모시는 신은  호루스 신과 악어 머리 ‘물의 신’ 샤베크 신이다.
- 아스완에 있는 필레 섬의 <아시스 신전>에서는  ‘빛과 소리의 향연’을 관람했다

호모 사피엔스에겐 위대한 능력인 언어, 즉 이야기를 통해 후손들에게 신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대지의 신 게브와 하늘의 신 누트의 아들 오시리스가 있었다. 동생 세트가 왕의 자리를 노려 그의 몸을 14조각 내 죽였다. 아내 이시스가 13조각을 찾아냈지만, 나머지 한 조각은 찾을 수 없었다. 아들 호루스가 세트와 전쟁을 벌였다. 왼쪽 눈이 뽑히는 대가를 치렀지만, 지혜의 신 토트의 도움을 받아 눈을 되찾고 승리했다. 그리고 이집트 왕이 되었다. 오시리스는 아내와 아들 도움으로 부활했지만, 호루스에게 세상을 맡기고 죽은 자를 심판하는 지하 세계의 왕이 되었다.” 간략하게 이 정도의 줄거리를 갖고 있는 신화이다.

이 신화에는 정의와 불의, 남편과 아내의 사랑, 충(忠)과 효(孝)의 개념이 복합적, 대립적으로 깔려 있다. 그러나 여기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부활’이다. 이 내세관으로 인하여 미라를 만들고 피라미드 문화가 발생했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리스 신들과 중첩된다. 아몬-제우스, 이시스-헤라, 호루스-아폴론, 토트-헤르메스, 하토르-아프로디테(비너스). 그들이 이집트 신을 모셔 갔기 때문이다. 신이면서 너무나 인간적인 태도 역시 닮았다.

파라오는 태어날 때부터 신이다. 신성과 인성, 즉 신권과 왕권을 동시에 장악한 강력한 통치자다. 그래서 알렉산드로스 대왕도 현세의 넓은 영토에 만족하지 못하고, 파라오를 자처하면서 신의 영역까지 발을 들여놓았다.

그들은 신전을 짓고 제를 지내며 신의 은혜에 감사한다. 한편으로는 자신의 재임기간 내 공적을 치장하기 위해 신전 내 구조물을 지었다. 마치 이탈리아 도시국가의 지도자들이 경쟁적으로 대규모 두오모(성당)를 짓는 심중과 비슷하다.

신전 중 압권은 아스완에 있는 아부심벨 암굴 신전이다. 불행히도 댐 건설로 인해 물에 잠겼으나, 유네스코의 도움으로 필레 신전과 함께 물 위로 올라왔다. 대신전은 807개, 소신전은 235개, 모두 1,042개의 블록으로 잘라 1967년부터 6년에 걸쳐 북서 210m, 높이 60m 현 위치로 옮겼다.

④ 아부심벨 신전과 네페르타리 소신전
 

   
▲ <아부심벨 신전(왼편)>은 높이 20m가 넘는 4개의 대형 람세스 2세 조각상이 웅장하다. 왼쪽 두 번째 조각상 얼굴 손상은 지진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 아부심벨 신전 벽화는 카데쉬 전투 묘사가 두드러지며, 전투는 기원전 1286년부터 16년간 계속되었다.
- 아내 네페르타리(‘태양은 그녀를 향해 뜬다’는 뜻) 소신전 왕비의 상은 ‘왕의 무릎 아래 높이’라는 관례를 깨고 나란한 크기의 입상 2체를 세웠다. 람세스 2세의 힘은 이집트의 3대 미녀’ 네페르타리의 사랑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안으로 들어가면 오시리스의 몸에 람세스 2세의 얼굴을 가진 기둥 8개가 나온다. 성소에는 다시 신이 된 람세스 2세, 헬리오폴리스의 태양신 라-호르아크티, 테베의 태양신 아멘-라, 멤피스의 어둠의 신 프타 상이 나란히 앉아 있다.

이곳엔 1년에 두 번(람세스 2세 탄생일과 그가 즉위한 10월 22일) 새벽 5시 58분 ‘태양의 기적’이 일어난다. 태양 빛이 신전을 가로질러 20분간 신상을 차례로 비춘다. 신기한 것은 어둠의 신 프타만 비추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만 이전 때 설계 착오로 옮긴 신전에는 이 기적이 하루 늦게 일어난다고 한다. 

   
▲ 신기루, 사막이 선물하는 보너스. 그림자가 있어 더욱 실제처럼 보이게 한다. 새벽에 출발하여 사막을 건넜다. 최고 기록 온도 550. 게다가 모래 밑 날카로운 바위, 차량 급제동 시 매우 위험하다.

사하라 사막을 가로질러 버스로 3시간을 달린다. 수단 국경선 근처, 이 먼 곳에 신전을 지은 까닭은 무엇일까? 사가(史家)들은 누비아 땅에 사는 이민족의 반역 의지를 꺾으려 한 것으로 해석한다. 그랬음인지 내부에는 막강한 경쟁국 히타이트와 운명을 걸고 벌인 전쟁 벽화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람세스 2세는 히타이트에서 승리를 널리 자랑하고자 했다. 그러나 인류 역사상 최장의 전쟁은 결국, 최초의 평화 조약(‘카데쉬 조약’’)을 맺고 끝냈다. 히타이트 쪽 기록에도 자신들의 승리라고 주장하는 점으로 보아 일방적인 승리가 아니라, ‘기진맥진한 무승부’ 아니었을까?

이 많은 신전은 신만을 위해 짓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람세스 2세는 67년간 통치하면서 곳곳을 자신의 조각상으로 도배했다. 이집트 유적지에서 돌을 던지면 세 번 중 한 번은 그와 관련된 곳에 떨어진다고 한다.

왕권을 더욱 공고하기 위한 정치적 수단이다. 신전마다 ‘왕권 수호의 신’ 호루스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으리라. 호루스는 이집트를 다스린 마지막 신이다. 그는 인간을 왕위에 올렸고, 대신 자신은 왕의 수호신으로 영원히 남았다.

백성들은 전해 들은 신화와 신전의 웅장한 규모, 그리고 뜻도 모르는 신성문자에 압도당해 파라오의 절대 권력이 신에게서 나왔다는 정당성을 인정하게 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오늘날 이집트 백성들이 신전 덕분에 먹고 살 수 있게 되었다는 역사의 역설이다.

☞ 여행 팁 : 박물관, 신전 등에서 사진 촬영은 3달러 정도 별도의 돈을 내야 가능하다. 그러나 성소, 묘지 내에서는 촬영이 제한되며, 적발 시 벌금을 내야 한다. 재밌는 것은 현장에서 1달러를 내면 무마되기도 하고, 아예 관광객의 사진기를 달라고 하여 촬영해 주는 대가로 1달러를 받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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