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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욕심 그리고 고대 이집트 공학의 기적을 보다이집트 기행 ③ 피라미드
노인영 논설위원  |  nohproble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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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2.27  09: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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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푸 피라미드와 카푸라 피라미드. 꼭대기와 비교해 보면, 왼편 쿠푸 피라미드 상부의 마감돌 훼손 흔적이 뚜렷하다.

사막과 녹지가 만나는 곳, 오늘날 이집트 카이로에서 남서쪽으로 13km 떨어진 곳에 기자 지역이 있다. 그곳엔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1889년 에펠탑이 등장하기 전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건축 구조물이 자리 잡고 있다.

높이 146m, 밑변 230m, 체적 250만m3, 전체 무게 약 684t. 돌의 평균 높이 50cm, 무게 2.5t이지만, 돌 하나의 무게가 15t으로 사람의 키를 넘는 것도 있다. 이런 돌 230만 개를 210계단(현재 203계단)으로 쌓아 올렸다.

지금까지 발견된 피라미드 중 가장 크다고 하여 대(大)피라미드라 불리는 쿠푸 피라미드 얘기다. 그리고 그 옆에는 143m 높이의 가장 아름다운 아들 카푸라 피라미드와 쌓다 만 65m의 손자 멘카우레 피라미드. 이 3개의 피라미드가 이집트를 대표한다.

밑바닥은 2.1cm 이내의 수평을 유지하고, 네 모서리는 정확하게 직각을 이룬다. 밑변 길이간 오차는 4.4cm. 통상 이 정도 규모의 건축물이면 100년에 12cm씩 내려앉아야 정상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곳 피라미드는 4500년간 온갖 풍상을 견디며 1.25cm만 내려앉았을 뿐이다. 고대 이집트 공학의 기적이다.

돌은 세 종류를 썼다. 석회암, 사암, 그리고 내부 석관이 안치된 방을 꾸민 100개의 화강암. 이 붉은 화강암은 오벨리스크와 마찬가지로 아스완에서 뱃길로 가져왔다. 안타까운 점은 외부 전체를 덮었던 흰 석회암 마감석이 크게 훼손되었다는 사실이다. 카이로에서 모스크를 짓는데 뜯어 사용했다고 한다.

   
▲ 꼭대기 7단이 무너지기 전 원래의 높이 146m를 표시하는 피뢰침 모양의 나무 막대기

내가 보는 눈이 좀 높다. 이래 봐도 나이아가라 폭포를 처음 보았을 때 상상에 미치지 못해 실망했을 정도이다. 그러나 피라미드는 직접 보아야 제대로 된 느낌이 온다. 상상 이상이다. 장엄하다 못해 압도한다.

피라미드의 역할과 관련해 여러 속설이 난무했으나, 지금은 왕이나 왕비, 그리고 왕실 가족을 매장하기 위해 건설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전체적인 모양은 태양 빛 한 줄기가 세상을 비추는 형상을 상징화했다.

본래의 입구는 북면 중앙에서 동쪽 17m 지상에 있지만, 큰 돌로 막아 놓았다. 그 오른쪽 아래 개방한 입구는 과거 도굴을 위해 파 놓은 곳으로, 도중에 원래의 통로와 서로 연결된다. (9세기 압바스 왕조 칼리프 알-마문이 입구를 뚫었는데, 그는 <아라비안나이트>에 등장하는 칼리프 하룬 알-라시드의 아들이라고 한다.)

   
▲ 피라미드 내부. 한증막에 들어선 것처럼 숨이 턱턱 막힌다.

내부로 들어가면 울림이 더 커진다. 습하고 복잡한 미로 같은 길을 기어서, 걸어서 올라간다. 한증막에 들어선 것처럼 숨이 턱턱 막히면, 그 옛날 신석기 시대가 끝난 직후 “어쩌자고 이런 돌무덤을 건설했단 말인가?”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마치 인간 욕심의 한계를 보여주는 듯하다.

피라미드는 어디서 보든 2차원 평면으로는 변의 길이가 230m, 경사각도 510 52’의 이등변 삼각형이다. 3차원으론 정사각뿔 모양이고. 길을 닦고 터를 잡는 데만 10년이 걸렸다. 엄청난 무게를 지탱할 견고한 바위 언덕이 필요했으니까. 북극성을 보고 정북을 맞춘 다음, 밑변의 꼭지점이 정확하게 동서남북을 향하도록 기초를 닦았다.

또한 돌을 다듬고 운반하여 각 층을 아래층보다 작게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데 20년 걸렸다. 왕의 방과 통로를 미리 공간 처리했고, 도굴과 붕괴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중앙 일직선 위 높이에 모두 5개의 방을 만들었다.

이 모든 작업은 농한기를 이용하여 연 10만 명이 넘는 인력이 동원되었다고 기록은 전한다. (피라미드에는 아무런 장식물이나 글자가 없는 줄 알았다. 그러나 6왕조 테티 피라미드에서 상형문자가 발견됨으로써 많은 의문이 풀렸다.)

   
▲ 고왕국 제3왕조 초기(B.C 2600년경) 축조된 최초의 조세르 스텝 피라미드 사카라. 평민 출신으로 유일하게 신의 반열에 오른 임호텝이 설계, 건축했다. 직사각형 전통 무덤 ‘마스타바 Mastaba’를 계단식으로 쌓아 올렸다. 그래서 맨 위가 편평하다.

피라미드는 작고 큰 것을 합치면 모두 100여 개 건설했다. 지금까지 발견한 피라미드는 70개가 넘고. 결론적으로 이곳은 대규모 왕실 묘지 복합단지다. 기자의 세 피라미드 외 많은 피라미드와 무덤이 모여 있다.

   
▲ 신전과 피라미드의 파수꾼 스핑크스. 투트모세 4세가 왕자 시절 꿈을 통해 발견했다고 한다.

쿠푸와 카푸라 피라미드 사이를 지나 비탈길을 내려가면, 카푸라가 만든 스핑크스를 만난다. ‘몸은 사자, 얼굴은 사람’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화에서 유래되었다.
하나의 돌(석회암)을 깎아 만든 이 스핑크스도 대단히 커서 대(大) 스핑크스라 한다. 길이 73m, 높이 22m로 이마에는 왕권을 상징하는 ‘사막의 신’ 코브라가 새겨져 있었다.

스핑크스 얼굴의 코 부분이 떨어진 것과 관련 나폴레옹군이 이집트 원정 시 대포를 쏘아서 망가졌다는 설이 있다. 프랑스 이집트 조사단이 떨어져 나간 턱수염 조각을 발견해서 그런가? 그러나 스핑크스 앞은 선착장으로, 배를 탄 이슬람군이 던진 돌을 던져 떨어져 나갔다는 생각이 중론이다.

하늘의 나일강을 건너는 태양선을 마지막으로 오늘 이야기를 마치려 한다. 태양선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제 선이다. 길이 43.4m, 너비 5.9m, 높이 7.5m로 꽃과 풀이 새겨진 뱃머리는 6m 높이로 솟아 있다. 4,500년이 흘렀는데 모습이 여전하다. 건조한 날씨와 모래 덕분이다.

태양신 라가 바로 이 배를 타고 명계(冥界)를 여행하며, 죽은 인간의 부활을 도왔다고 한다. 그러니 죽은 파라오의 영생을 바라며 배를 만들었으리라. 쿠푸왕의 아들도 이 배로 아버지의 미라를 멤피스에서 기자 지역으로 운반했다.

그리고 운반 후 배를 650부분, 1,224조각으로 분해하여 구덩이를 파고 지하에 묻었다. 1954년 두 척을 발견했는데, 우선 한 척만 복원했다. 배의 부패 상태를 연구 후 추가로 발굴할 예정이라고 한다.

인생은 하루하루가 쌓여 완성된다. 그리고 그 하루를 무엇으로 채웠는가에 따라 인생의 가치가 평가된다. 쿠푸왕도, 람세스 2세도 못다 한 하루가 지금 당신 곁을 무심히 흘러가고 있다. 마지막 순간, 왜 후회가 없겠는가? 나는 안다. 그 1순위는 “그때 그걸 해보았더라면…”이다.

속는 셈 치고 당신의 버킷리스트에 이곳을 담아 보라. 가서 오색 레이저 빛이 어둠 컴컴한 사막을 가로질러 스핑크스와 피라미드를 비추는 공연을 감상해 보라. 이집트 역사와 피라미드를 이야기해 주는 웅장한 목소리에 흠뻑 빠져 보라.

게다가 이곳에서 몇 년에 한 번씩 열린다는 오페라 <아이다> 공연을 즐기게 된다면 그건 분명 행운이다. 풍요로운 인생이다. 인샬라.

☞ 여행 팁 : 시장도 그렇지만, 관광지는 특히 바가지를 쓰기 쉽다. “1달러”를 외치지만, 보는 데 그렇다는 뜻이다. 흥정이 길어지면 “네가 가격을 부르라”고 한다. 흥정은 야무지게 하되, 되돌아와서 그 물건을 다시 사려 하지 말라. 이전 흥정가액으로는 어림없다. 이곳 피라미드 지역에서는 낙타를 향해 사진 찍었다고 1달러를 내라고 다그친다. 허~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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