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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시 돌아온 새 생명을 만나보지 못했다"이집트 기행 ④ 암굴묘역 ‘왕가의 계곡’
노인영 논설위원  |  nohproble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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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2.31  08:3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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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래 계곡에 위치한 암굴 묘역. 한 장의 입장권으로 3개 능을 관람할 수 있으나, 투탕카멘 능은 별도의 입장권을 사야 한다.

아무래도 우린 다시 룩소르(Luxor)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 그리스인이 자신들의 고향 그리스 중부 한 도시를 빼닮았다고 하여 이름 붙여준 신왕국 1000년 수도 테베. 룩소르의 동안에 신전이 있다면, 죽은 자의 땅 서안 네크로폴리스에는 ‘왕가의 계곡’이 있다. 파라오와 왕비의 주검이 묻힌 곳이다.

피라미드는 우선 비용이 너무 많이 들었다. 국가 재정이 흔들릴 정도로. 그리고 아무리 견고하게 지었다 해도, 도굴범에게는 “날 파보시오”라고 광고하는 격이다. 그래서 나일강에서 멀리 떨어져 외진 곳, 피라미드를 연상시키는 450m 알-쿠른(Al-Qurn) 산 계곡의 바위를 팠다. 바로 ‘왕가(王家)의 계곡’이다.

제18 왕조 투트모세 1세부터 제20왕조 람세스 11세까지의 역대 파라오들이 묻힌 곳으로, 현재까지 계곡 동, 서쪽에서 모두 63기의 능이 발견되었다. 왕들의 계곡, 왕비의 계곡, 그리고 능과 떨어진 별도의 장례신전(葬祭殿,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파라오의 미라가 보관된 곳)으로 구성된 공동 묘지다.

현재 일반인에게 개방된 능은 10기에 불과한데, 전체적인 무덤 내부 구조는 비슷하다. 계단과 경사로를 이용하여 깊은 곳은 100m까지 들어간다. 방은 부속실(사적인 생활용품들을 넣어둔 방), 전실(종교의식 등에 사용되는 도구를 넣어둔 방), 현실(관을 넣어둔 방)로 나누었다.

제18~19왕조에는 능에 수직갱('샤프트')을 뚫고, 관을 깊숙이 숨긴 후 전실을 오히려 눈에 띄게 했지만, 도굴범에게 난공불락이란 없었다. 도굴의 피해를 보지 않은 것은 투탕카멘의 무덤뿐이었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고, 람세스 6세의 능을 판 흙에 덮여 도굴범의 눈을 피할 수 있었다고 한다.

   
▲ 하트셉수트 장제전과 호루스 상. 피라미드에는 못 미치지만, 규모가 엄청나다. 1997년 11월 17일 이곳에서 여행객을 향해 대상으로 한 무차별 난사가 있었다. 경찰관을 포함해 63명이 사망했고, 이후 관광지 출입 시 검색이 강화되었다.

장제전을 따로 만든 이유도 역시 도굴을 염려해서다. 람세스 2세의 라메세움, 람세스 3세의 메디네트 등이 있지만, 우린 하트셉수트의 화려한 장례 신전을 찾았다. 15년에 걸쳐 붉은 사암으로 병풍을 두른 이곳에 3층 테라스를 기둥이 떠받치는 독특한 구조로 지었다.

그녀는 (클레오파트라 7세는 마케도니아 사람인 까닭에) 이집트 유일한 여왕이다. 신왕국 제18왕조 다섯 번째 통치자로, 남장하고 가짜 턱수염을 달고 20년간 나라를 다스렸다. 파라오는 ‘태양신의 아들’로 여왕은 파라오가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내치에 성공하여 이집트 역사의 전성기를 맞게 했다.

하트셉수트는 정통성 문제로 시달렸기에 아멘 신의 딸로 태어났다는 설화를 만들었고, 이곳에도 관련 벽화를 남겼다. 그러나 많은 기념물을 남겼음에도 대부분 소실되었다. 그녀의 이름을 이집트인 기억에서 지우려는 투트모세 3세에 의한 일종의 격하 운동으로 빚어진 일이다.

여하튼 그녀의 능과 장제전은 왕비가 아닌, 왕들의 계곡에 당당히 위치한다. 비록 남장한 모습이긴 하지만. 그러나 2층 남쪽 끝에 하토르 여신(호루스의 아내)의 작은 신전을 만들어 놓았다. 후대에 자신의 성 정체성을 분명히 알리려 한 의도는 아니었을까?

   
▲ '멤논의 거상'

하트셉수트 신전에서 나일강 쪽으로 나오다 보면 파라오 좌상과 마주친다. 벌판에 크고 매우 인상적인 두 개의 거대한 좌상이 떡 버티고 앉아 있다. 신왕국 18왕조의 파라오 아멘호테프 3세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기원전 27년 발생한 지진의 여파로 좌상에 금이 갔다. 그리고 그 사이로 부는 아침 바람을 통해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은 이 소리에서 트로이 전쟁 때 죽은 에티오피아의 영웅 멤논이 사후 아침 해가 뜰 때 냈던 구슬픈 탄식 소리를 연상했다. 그래서 이 좌상의 이름이 '멤논의 거상'이다.

   
▲ 프랑스 네오 클라식 양식의 <국립 고고학 박물관> 전경. 건물 앞 연못에는 고대 상이집트 상징 연꽃이 심어져 있다. 하이집트 상징은 파피루스이다..

 

능에서 발견한 유물을 소개하려면, 국립 고고학 박물관 소개가 불가피하다. 그곳엔 온전히 발견된 투탕카멘의 소장품을 비롯해 보물 40만 점이 소장되어 있다. 그중 12만 점 정도가 일반 관람객에게 공개되고 있다.

그러나 공간이 좁다 보니 복도에 있는 유물은 발에 채고, 아이들은 조각상 위로 올라가 뛰어놀기도 한다. 2017년 우리 국립박물관에서 열린 <이집트 보물전>에선 모두 조심조심 유리에 넣어 전시했는데…

   
▲ 관람 순서 : 1층을 시계 방향으로 고왕국, 중왕국, 신왕국 유물을 보고, 2층으로 올라가 투탕카멘 방을 중심으로 둘러 본 다음 중앙계단으로 내려온다.

 
이곳엔 화장 문화가 없다. 이집트인은 생명이 육체와 함께 영혼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하늘로 올라가고, 다시 찾아온 영혼, 즉 ‘카(생명력)’와 ‘바(영혼)’는 미라의 입을 통해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다. 내세에 대한 이런 믿음은 오늘날 이집트 곳곳에서 문명이란 이름으로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다. 피라미드, 암굴 묘역, 미라, 사자의 서 등등.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의 욕망은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중 으뜸은 지금 가지고 있는 육체의 부활과 영생(永生)이리라. 그러나 아쉽게도 이집트 여행 기간 내내 나는 다시 돌아온 새 생명을 만나 보지 못 했다.

‘무항산 무항심’(無恒産 無恒心, 생활이 안정되지 않으면 마음을 지키기 어렵다). 오히려 성소(聖所)에서조차 신을 두려워하지 않고 현세에 천착하는 모습만 확인했을 뿐이다. 그리고 내겐 그 모습이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믿음이 부족해서일까?

☞ 여행 팁 : 챙 넓은 모자와 선크림과 선글라스는 필수품이다. 그리고 입과 코로 불어오는 모래바람을 막아줄 스카프, 여성은 작은 양산 겸 우산을 챙기는 것이 좋다. 다른 곳과는 달리, 알렉산드리아에서 비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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