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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파티아 죽음에의 전율, 그 흔적을 더듬어 봤다이집트 기행 ⑤ 알렉산드리아
노인영 논설위원  |  nohproble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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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1.07  08:4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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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3세기, 알렉산드리아에서 흥미로운 실험이 있었다. 지구의 둘레를 재는 인류 최초의 실험이었다. 수학자 에라토스테네스는 알렉산드리아와 시에네(현 아스완)에 각각 크기가 같은 막대기를 세워놓았다. 같은 시간에 두 곳의 막대기 그림자 길이가 같다면 지구는 편평한 것이다.

약 800km 떨어져 있는 두 곳 막대기 사이에 7도의 사잇각 차이가 났다. 차이가 난다는 것은 지구 표면이 곡면이란 뜻이다. 360도로 환산하여 지구의 둘레가 4만km라고 답을 냈다. 실제 지구의 둘레는 4만 75km이다. 오늘날에도 전혀 무리가 없는 답이었다.

   
▲ 2.4km 지중해 해변 한 자리를 차지한 몬타자 궁전. 터키와 피렌체 양식이 결합되었다.

당시 알렉산드리아에는 에라토스테네스 외에 별자리 지도를 작성한 히파르코스, 기하학의 유클리드, 로봇에 관한 최초의 책 <오토마타>를 저술한 헤론, 공학자 아르키메데스 등이 활동했다. 철학 분야에서는 코스모폴리타니즘(cosmopolitanism, 세계시민주의)이 등장했다. 그리고 에피쿠로스학파와 이성에 따른 금욕주의를 추구하는 스토아학파도 탄생했다.

최고 수준의 학술원 ‘무세이온(Mouseion, 박물관 ‘뮤지움’의 어원)’ 덕분이다. 프롤레마이오스 1세가 설립했으며, 그는 철인(哲人) 군주 알렉산드로스처럼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수학했고, 문화와 문명을 아끼는 지도자였다.

   
▲ 고대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기원전 3세기 파로스 등대는 빛을 50km 밖까지 비췄다. 13세기 그 자리에, 그 돌로 건설된 3층 구조물 카이트베이 요새.

이집트에는 그레코로만(그리스-로마) 시대 1000년의 역사가 있다. 마케도니아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300년, 로마 제국 700년. 그리고 그 중심지는 지중해와 맞닿은 북아프리카의 고도(古都) 알렉산드리아다. 이곳에는 두 개의 등대가 있었는데 하나는 진짜 등대이고, 다른 하나는 무세이온의 부속기관인 도서관이다. ‘혜명(慧命)의 등불’이다.

   
▲ 2002년 새로 지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250만 권 소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외벽 세계 글자 석판에는 한글 ’월, 세, 강’ 세 글자가 새겨져 있다. 건립 당시 후원은 없었지만.

한때 장서가 60만 권 이상 소장되던 도서관 서가에는 아리스타르코스라는 천문학자는 쓴 책이 한때 있었다고 한다. 그는 지구도 하나의 행성으로, 여타 행성처럼 태양 주위를 공전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2세기에서 3세기 사이 300년간 알렉산드리아에서 지식의 융합이 일어난다. 그리스 철학과 기독교, 즉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이라는 이질적인 두 문명이 만났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많은 책은 지금 전해지지 않는다.

서기 392년 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가 기독교를 국교로 삼으면서 이교도의 우상을 파괴하도록 지시했다. 세라피스 여신의 신전 바로 옆 알렉산드리아 도서관도 그때 방화, 약탈로 장서 70%가 소실되었다.

   
▲ 비를 맞고 서 있는 폼페이우스 기둥. 꼭대기 말 탄 기사의 조각상이 폼페이우스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일 뿐이다. 항해하는 이에게 길을 알려주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415년에 여성 최초의 수학자이자, 신 플라톤학파의 수장이었던 히파티아가 살해되었다. 그녀는 아름다웠다. 학문과 결혼했고, 수학과 철학 분야에서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무세이온에서 사상의 자유와 과학을 설파했다.

그러나 키릴로스 주교의 눈에는 그녀가 이교도로서 전형으로 보였다. 그를 추종하는 수도사 베드로 무리가 히파티아를 납치하여 알몸이 된 그녀의 살갗을 굴 껍데기로 벗겨냈다. 그리고 피투성이가 된 몸뚱이를 산채로 불 속으로 던져버렸다.

"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 하니 오직 조용할지니라.” (디모데 전서 2:11-14) 키릴로스가 그녀를 죽일 때 인용했던 성경 구절이라고 한다.

642년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도시를 점령한 이슬람 세력에 의해 다시 한번 결정타를 맞는다. 하지만 이집트는 히파티아가 살해당한 순간, 중세 암흑의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봐야 한다.

   
▲알렉산드리아 해변에서 한 때를 보내고 있는 히잡 쓴 여성들. 

다른 이들은 이곳에서 클레오파트라 7세와 카이사르, 그리고 안토니우스와 로맨스를 떠올린다. 4개 국어에 능통하고 토론을 즐겼으며 자존심이 강했던 그녀. 그녀의 젖꼭지를 물어 자결을 도왔다는 코브라를 이곳에선 ‘사막의 신’의 은유로 해석한다.

꼭 한 번 지중해의 아름다운 휴양 도시 알렉산드리아를 찾아오고 싶었다. 히파티아의 죽음에 전율했던 나는 이곳에서 그 흔적을 더듬어 보고자 했다. 지금은 다 사라져 버렸으리라 짐작을 하면서도 그러고 싶었다.

따뜻한 햇살, 아름다운 지중해의 풍광을 갖춘 곳. 학문과 문화가 풍성했던 이곳이 어떻게 광신과 극단의 참혹한 현장으로 변해버릴 수 있었는지 직접 확인해 보고 싶었다.

☞ 여행 팁 : 이슬람 문화권이라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 또 하나는 술이다. 식당엔 와인과 맥주 정도가 고작이다. 호텔에는 양주가 있지만, 조니워커 레드 한 종류만 달랑. 팩 소주가 20달러이고 500ml 소주가 30달러이니 비교해 보시라. 사카라, 스텔라(라거) 맥주는 3달러. 그런데 와인 따개가 없어 식당에서 빌려서 마시려 하자, 세팅 비용이 사 먹는 가격의 2/3 수준이다. 안 먹고 말지.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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