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 2019.3.22 금 10:33
  • 영어
  • 일본어
  • 프랑스어
  • 중국어
  • 스페인어
> 행복마당 > 논어와 왕조실록 다이제스트
부유하면서도 교만함이 없다<부이무교(富而無驕)>8번째 이야기
장영화 편집위원  |  zang-1571@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9.01.09  09:56:27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인조가 즉위한 지 이제 겨우 열흘이 지났다. 반정 기간에 피를 너무 많이 묻혔다. 광해군을 폐위시켜 강화도로 유배보내고, 당시 정국을 주도했던 대북파의 이이첨·정인홍 등 수십 명을 처형했다. 앞으로 있을 또 다른 피비린내를 예고 하득  피비린내가 바람을 타고 몰려왔다.

세자시절 제왕학을 배우지 못한 인조는 이 무렵 대학과 논어를 공부하고 있었다. 봄날의 아지랑이가 지천인 1623년 4월 22일 문정전(文政殿)에서 조강에 논어를 공부하다가 ‘부유해도 교만하지 않는다(富而無驕)’라는 대목에 이르자, 참찬관(參贊官) 정경세가 자세를 가다듬고 임금에게 이렇게 아뢰었다.

“지위가 높으면 저절로 교만해지고 녹봉이 많으면 저절로 사치스러워지니, 사람은 모두 그렇습니다. 임금은 신민(臣民)의 위에 군림하고 있으니, 만약 경건한 생활태도를 지니지 못하면 교만하고 사치스러워지는 마음이 쉽게 생겨 그 해독이 나라를 망치는 데에 이르고 맙니다. 옛날의 명철한 왕들은 마음을 방탕하게 놔두지 않아 위로는 하늘과 조종(祖宗)을 두려워하고 아래로는 대신과 대간을 두려워했으며 심지어는 아래 백성들까지도 두려워하지 않는 경우가 없었습니다. 이른바 두려워하는 마음이 곧 경(敬)이라는 것입니다. 성상의 자질이 영특하시고 학문이 고명하시긴 하지만 신하가 진계(進戒)할 때에는 밝은 임금이라고 하여 소홀히 하지는 않는 법입니다. 그래서 요·순 당시에도 ‘단주(丹朱)처럼 오만하지 마소서.’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말한 오만이 바로 교만입니다.”

부이무교는 학이편 15장에 나온다.

子貢曰 貧而無諂하며 富而無驕 何如하니잇고? 子曰 可也나 未若貧而樂하며 富而好禮者也니라. 子貢曰 詩云如切如磋하며 如琢如磨라 하니 其斯之謂與인저. 子曰 賜也는 始可與言詩已矣로다. 告諸往而知來者온여. (자공이 묻기를 “가난하면서도 아첨함이 없으며 부유하면서도 교만함이 없는 것이 어떻습니까?” 공자가 답하길 “그것도 괜찮으나, 가난하면서도 즐거워하며 부유하면서도 예(禮)를 좋아하는 자만은 못하다.” 자공(子貢:端木賜)이 말하길 “시경(詩經)에 절단해 놓고 다시 그것을 간 듯하며, 쪼개 놓고 다시 잘 연마한 듯하다. 고 했으니 아마도 이것을 말함일 것입니다.” 그러자 공자가 말했다. "자공(賜)은 이제 비로소 함께 시(詩)를 말할 만하구나. 지나간 것(이미 말해 준 것)을 말해 주면 올 것(말해 주지 않은 것)을 아는구나.")

이 문장은 주자가 풀이하기를 첨은 비굴(卑屈)하게 낮추고 굽힘이요, 교는 자랑하고 방사(放肆:거리낌 없이 제멋대로 하여 어려움성이 없음)함이다. 일반 사람들은 빈부의 가운데 빠져서 스스로 지킬 줄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반드시 이 두 가지의 병통이 있다. 즉 아첨함이 없고, 교만함이 없다면 스스로를 지킬 줄을 아는 것이지만, 빈부의 밖으로 벗어나지는 못한 것이다. 무릇 가(可)라고 말씀하신 것은 겨우 가능하지만 미진한 바가 있다는 말이다. 즐거워하면 마음이 넓고 몸이 펴져서(心廣體胖)그 가난함을 잊을 것이요, 예를 좋아한다면 선에 처함을 편안히 여기고, 이치를 따르기를 즐거워해서 또한 스스로 그 부유함을 알지 못할 것이다. 자공은 돈을 발 벌었으니, 먼저는 가난하고, 뒤에는 부유해서 일찍이 지조를 지키는 데에 힘을 쓴 사람이다. 그러므로 이를 가지고 질문을 한 것인데 공자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으니, 이는 이미 능한 무첨(無諂) 무교(無驕)를 인정하고, 아직 이르지 못한 낙(樂)과 호례(好禮)를 힘쓰게 하신 것이다.

시는 시경(詩經) 기욱(淇奧)편이다. 뼈와 뿔을 다루는 자는 절단한 다음 다시 그것을 갈고, 옥과 보석을 다루는 자는 쪼아 놓은 다음 다시 그것을 연마하니, 다스림이 이미 정(精)한데, 더욱 정(精)함을 구하는 것을 말한 것이다. 자공(子貢)은 스스로 아첨함이 없고, 교만함이 없음을 지극하다고 여겼는데, 공자의 말씀을 듣고 또 의리(義理)가 무궁하여 비록 얻음이 있더라도 대번에 스스로 만족해서는 안 됨을 알았다. 그러므로 이 시(詩)를 인용하서 밝힌 것이다. 왕(往)은 이미 말해 준 것이요, 래(來)는 아직 말해 주지 않은 것이다. 이 문장의 문답은 그 얕고 깊음과 높고 낮음이 진실로 변설(辨說)을 기다리지 않고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그러나 절단하지 않으면 가는 것을 베풀 곳이 없고, 쪼개 놓지 않으면 곱게 연마하는 것을 베풀 곳이 없다. 그러므로 배우는 사람들은 비록 작은 성취에 안주하여 도에 나아가는 극치(極致)를 구해야 되지만 또한 허원(虛遠)한 데로 달려가서 자기 몸에 간절한 실제 병통을 살피지 않으면 안 된다.

장영화 편집위원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여백
여백
여백
신문사소개커뮤니티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명칭 : 노인행복신문  |  등록번호 : 서울, 아03332  |  등록일자 : 2014년 9월22일  |   제호 : 노인행복신문  |  회장 : 윤진평  |  발행ㆍ편집인 : 주장환
주소 : 서울시 강서구 가양동 허준로 175  |  발행일자 : 2014년 9월 25일  |  주사무서 또는 발행소의 전화 : 02)3662-5872  |  청소년책임자 : 노인영
Copyright © 2019 노인행복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