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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마당 > 윤진평의 심경부주 강의
내 마음이 가는 그곳에 무엇이 존재하나?
윤진평 (본지 회장)  |  yjp005@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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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2.12  19:4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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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자유행복학교가 올해부터 기획한 인봉 윤진평 선생의 『심경부주(心經附註)』 강의를 옮긴 것이다. 강의는 2월 9일 오전 11시 서울 인사동 호산 붓박물관에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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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 있는 삶을 찾고 싶다.” “빵만 먹고 살 수 없다.” “보다 문화적인 삶을 누리고 싶다.” “나의 뿌리를 찾고 싶다.” ”나는 소중한 사람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이렇게 부르짖는 인간의 심층 속에는 “내가 누구인가?” 하는 근원적 물음이 자리하고 있다. 그것은 사람 마음의  본질은 무엇이고  어떻게 발현되며 자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그것은 과연 어떤 이치로 움직여 가는지 등에 대한 의문이다.

인간이 지상에 발을 디디면서부터 이러한 의문을 가지고 고민했으나 온갖 잡소리만 오갈 뿐 오늘날 까지도 그 의문을 다 풀지 못하고 있다. 하다하다 기계론적 인간에 이어 이제 드디어 AI( Artificial Intelligence) 인간 등장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러한 때에 인간의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아서 무엇하나?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마음 작동법을 안다는 것은 나 자신이 누구인가를 찾아가는 가장 좋은 방법이니만큼 제쳐두고 모른 척 할 일은 아니다..

서양에서는 데모크리토스가 인간의 마음을 알고자 했던 최초의 사상가다. 그는 인간의 행동을 몸과 마음 즉 이원론적인 관점에서 봤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했는데 이는 우리의 감각을 통해서는 신뢰할 수 있는 지식을 얻을 수 없다는 말이다.

   
▲ 강의 중인 인봉 윤진평 선생(왼쪽).

동양에서는 『서경(書經』)①<대우모 大禹謨>편에서 인심(人心)과 도심(道心)으로 나눠 설명하고 있는데 『심경(心經)』②의 첫머리는 여기서 빌어왔다. 대우모에서 우는 우(禹)임금을 말하며 모는 계책 도는 기획 정도로 번역하면 된다. 말하자면 우임금의 세상을 사는 지혜나 묘책 정도로 알아두면 무난하다.

“사람 마음(人心)은 위태롭고, 깨친 마음(道心)은 미약하다. 정밀하게 살피고 일관되게 노력하여, 진정 그 중(中)을 잡으라.”(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

이는 한 마디로 ‘수기치인(修己治人)’의 길을 제시한 것이다. 실천 주체는 바로 마음(心)이다 그것을 공부해 중용의 길을 가라는 것이다. 사람 마음(인심)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그러나 넘치거나 방치하면 나쁘게 변할 가능성이 있다. 똑같은 마음이라도 자신의 득실에 따라 악하게도 선하게도 변한다. 운전할 때와 보행자로 길을 갈 때 마음이 다른 것이 그런 것이다. 배고프면 짜증나고 배가 차면 너그러워진다. 그래서 위태롭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도심은 양심(良知)으로 도덕적 본성(인의예지 또는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을 내면에 모두 가지고 있지만 미묘해서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도심을 더 많이 드러내고 인심을 마음 속에 적당히 가두는(도심 60%, 인심 40% 정도) 절차탁마의 수양이 요구된다. 그게 바로 ‘오로지 정밀하게 살피고 한결같이 하는 것(惟精惟一)으로 도심을 드러내는 방법이다. 유정유일의 수양을 통해 윤집궐중의 경지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이 오래된 구절은 흔히 중국에서 요순시대라고 부르는 때의 순(舜)임금이 한 말이다. 그는 효행이 뛰어나 요(堯)임금으로부터 세습이 아니라 ‘선양(禪讓)’의 방식으로 천하를 물려받았으며 이런 전통은 물을 잘 다스린 우(禹)임금으로 이어졌는데 ‘인신유위~’란 말은 이때 왕위를 물러주면서 한 말이다.

이때는 삼황오제시대③라고 하여 중국 상고시대니 아마도 기원전 2000년 이상은 거슬러 올라간다. 놀라운 일이다. 이제 겨우 사람으로서의 꼴을 갖춰나가던 시기에 인간의 마음을 이렇게 잘 정리한 말을 하다니 당시 사람들의 지혜가 현대인 못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더군다나 이 말은 두고두고 동양사상의 바로미터가 된다. 공자의 ‘ 말로 하지 않아도 다 알게되고 통한다(默而識之)’와 ‘일관지도(一貫之道/충서)’, 『대학』의 성의(誠意)·정심(正心), 『중용』의 신독(愼獨), 맹자의 ‘잃어버린 마음을 찾기(求放心)’·몸을 돌이켜 성실하게만 하면 그보다 더 큰 즐거움이 없다(反身而誠, 樂莫大焉.) ‘존심양성(存心養性/수양론적 심학), ‘진심지성(盡心知性)’ ‘세상 모든 만물의 이치가 내 몸에 다 구비돼 있다(萬物皆備於我/본체론적 심학), 성리학적 심학(심성의 수양이 중심)과 육왕학(양명학)적 심학의(마음의 본체가 중심) 등으로 이어진다.

마음의 개념은 다양하게 분석되어왔다. 마음이 발동하기 이전(未發)과 발동한 이후(已發)에 따라 체(體)·용(用)으로 구분하여 각각 본체로서의 성품과 작용으로서의 감정으로 분석한다. 이에 비하여 “마음은 기질이요 성품은 이치(心氣性理)”라 파악하는 입장은 성품과 마음을 우열관계로 파악한다.

이에 따라 마음에 선의 근원과 악의 계기를 발견하고 악을 억제하며 선을 실현하는 수양론적 방법이 논의된다.

송대 심학에서 정호는 “마음이 곧 하늘이다(只心便是天)”라 했으며 장재는 “마음이 성품을 다할 수 있다(心能盡性)”고 했다. 남송대의 호굉은 “천명은 성품이요 인성은 마음이다(天命爲性 人性爲心)” “마음이란 천지를 알고 만물을 주재함으로써 성품을 이루는 것이다(心也者, 知天地, 宰萬物, 以成性者也)”하며 바톤을 이어나갔다. 심학화(化)의 절정을 이루었던 인물은 왕수인으로 주희의 주자학파들로부터 견제를 받는다. 심학의 발전 과정을 다져 보자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다. 불교나 도교와도 많은 영향을 주고 받았다.

   
▲ 심경부주

이제 다시 『심경』으로 돌아가 보자. 이 책은 퇴계 이황이 “신명처럼 공경하고 부모처럼 존숭한다”고 할 정도로 심취했다고 해서 사람들에게 조금 알려졌으나 유학만 제재로 된 학문이라며 다른 것은 거뜰어보지도 않았던 조선시대에는 그다지 관심을 받지 못했다. 물론 일부 유학자들 사이에서는 『소학』, 『근사록』과 함께 몰래 읽는 불온서적이 되기도 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한형조 교수에 의하면 서양의 동양학 연구에서도 전혀 주목받지 봇했다고 한다. 유교 연구의 권위자인 컬럼비아대의 드 베리 교수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도산서원에 들른 그는 도서관에서 『심경』이라는 낯선 제목의 책을 발견한다. 그 직전 해인사에 들러 『반야심경』 목판 카피본을 기념선물로 받은 터라, 그는 이 책이 처음엔 『반야심경』인 줄 알았으나 ‘새로운 유교’인 주자학의 교범임을 알고 실소했다고 한다(de Bary, Neo-Confucian Orthodoxy and the Learning of the Mind-and-heart).

또 일본에서는 막부 말과 메이지 초기 유교 행동주의자들이 심경을 최고의 책으로 받들었다고 한다.

『퇴계선생언행록』에 의하면 퇴계는 이 책을 33세 때인 성균관 유학 시절 처음 접하고 “심학의 연원과 심법의 정미함을 알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도산에 물러나 은거할 때 아침에 깨어나면 이 책을 유장하게 읊음으로써 하루를 시작했다. “나는 이 책을 신명(神明)처럼 믿었고, 엄부(嚴父)처럼 공경했다”고 한다.

논어에서 공자는 40에 사리(事理)에 의혹하지 않았으며, 50에 천명을 알았고, 60에 귀로 들으면 그대로 이해되었고, 70에 마음에 하고자 하는 바를 따라도 법도(法度)를 넘지 않았다.(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라고 하며 마음 다스림의 경지를 보여줬다. 공자 역시 마음 공부를 통해 인심과 도심의 중간자리를 찾으려 노력했음을 알수 있다.

사물의 당연한 도리를 믿어 의심치 않는다면 자신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갈수 있으며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안다. 마음이 어긋나거나 거슬림이 없으면 지혜가 넘쳐나 보지 않아도 알 수가 있는 아는 것이다. 그 마음에 하고자 하는 바를 따라도 저절로 어떤 선(법도)을 넘지 않으니 이게 바로 도심의 자리에 앉은 것이 아닌가? 바로 무심(無心)이고 무위(無爲)의 경지다.

사람의 마음에는 인심과 도심이 공존한다. 성인도 다를바 없다. 인심은 사욕이고 도심은 양심이다. 양심은 중(中)의 마음이고 인의예지의 마음이다. 식욕이나 성욕은 누구나 갖고 있다. 성인도 그렇다.

이치에 맞고 절도에 맞으면 천리(天理)가 되고 도심이 된다. 이치가 없고 절도가 없으면 인욕이 되고 인심이 된다. 양심으로 대하면 도심이 되지만 사욕으로 대하면 인심이 된다.

인심과 도심을 조화롭게 지켜서 중도를 잡아야 한다. 도심을 한결같이 지켜야 중도를 잡을 수 있다. 중도는 중(中)과 화(和)가 지극한 것이다. 인의예지의 마음으로 정직과 성실을 지극히 하는 것이다. 중도를 잡는다는 것은 양심으로 사욕을 다스리는 것이다. 양심을 주인으로 삼고 사욕을 다스리면 중도를 잡을 수 있다.

사람의 삶은 정직이 정도(正度)이다. 정직하게 살면 저절로 당당해 진다. 무엇인가 감출 필요가 없으므로 언제나 떳떳하다. 거짓으로 살면 마음이 두고두고 불편하다. 스스로 감추어야 할 것도 많아진다. 정직하게 양심으로 사는 것이 인생의 정도요, 원칙이요, 근본이다. 남이 나쁘다 하여도 양심이 옳다고 하면 양심을 따라야 한다. 무슨 일이든지 이성과 양심이 명하는 길을 따라 하도록 힘써야 한다. 양심에 따라 떳떳하게 살아가야 한다. 양심으로 사욕을 다스려 중도를 잡아야 한다.

깨달음을 통한 자아성찰이나 마음을 다독여 삶의 질을 높이고자 하는 마음공부(심경)의 중요성은 날이 갈수록 더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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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①『서경』은 중국 고대 문화의 원류를 담고 있는 책으로 지은이가 불명하다. '서(書)'라고 부르다가 한나라 때 들어와유가사상의 지위가 상승됨에 따라 소중한 경전이라는 뜻을 포함시켜 '상서(尙書)'라고 하였다. 순자(荀子)는 『상서』를 '정치의 기(紀)'라 하였고 공영달(孔穎達)은 '군주의 사고(辭誥)의 법전'이라고 하였다. 사고(辭誥)란 군주가 내린 명령이나 포고를 아우르는 말이다. 대체로 보아 『서경』은 군왕과 대신 사이의 대화, 군왕에 대한 대신의 건의, 인민에 대한 군왕의 통고, 전쟁에 임하는 군왕의 맹서, 군왕이 신하에게 특권과 책임을 부과하는 명령 등 다섯 종류의 문건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중국 고대사를 서술할 때 『서경』과 『시경』에서 자료를 많이 취하였다.

②『심경』을 편찬한 사람은 중국 송대의 서산(西山) 진덕수(眞德修·1178~1235)다. 주자의 고제로서 마음의 훈련에 관한 “성현(聖賢)의 격언을 취해” 이 책을 만들었다. 사서(四書)와 삼경(三經)의 경구, 그리고 북송 유학자들과 스승 주자의 잠명(箴銘) 가운데 서른일곱 조항을 뽑고, 그 아래 간략한 보충과 해설 격 경구들을 덧붙였다. 원대의 정민정(程敏政·?~1499)이 이들 주석이 너무 소략하고 잡박하다 하여 대폭 보완해 『심경부주(心經附註)』를 간행했는데 이 확장본이 조선에서 유통됐다.

③삼황은 수인씨(燧人氏)・복희씨(伏犧氏)・신농씨(神農氏), 오제는 황제(皇帝)•전욱(顓頊)•제곡(帝嚳)•요(堯)•순(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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