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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異端)을 공격하면 해로울 뿐이다.<공호이단(攻乎異端)>19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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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2.25  08: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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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 14년, 1483년이다. 임금이 창덕궁으로 돌아온 지 이제 보름이 좀 더 지났다. 서울 안팎에 굶주려 빌어먹는 자가 많으니 진제장(賑濟場)을 성 밖 동 · 서쪽에 설치했다. 독일에서는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가 태어났다.

1월20일, 임금이 승정원(承政院)에 “삼자(三子: 노자, 장자, 열자)를 강(講)하고자 하는 물음에 어찌하여 대답하지 아니하는가?”하고 전교했다. 그러자 도승지 이세좌 등이 이렇게 아뢰었다.

“신 등은 생각건대, 임금은 마땅히 성현(聖賢)의 글을 보고 고금(古今)의 다스려지고 어지러웠던 자취를 상고할 뿐이며, 장자(莊子),노자(老子),열자(列子)는 바로 이단(異端)의 글인데 경연에서 진강(進講)하는 것은 필요치 않다고 여깁니다.”

홍문관 박사(弘文館博士) 이거 역시 이렇게 말했다.

“장자,노자,열자는 이단의 글이므로 볼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임금이 다시 전교하기를 “성현(聖賢)의 글을 읽고서 그 옳은 것을 알고 이단의 글을 읽고서 그 그른 것을 알게 하는 것이 또한 옳지 아니한가?”하였다.

이거가 다시 아뢰기를, “공자(孔子)가 말하기를, ‘이단을 전공하면 해롭다.’고 하였는데, 그것을 해석한 이가 말하기를, ‘점점 젖어서 그 속으로 들어간다.’라고 하였으니, 하필 이단의 글을 널리 본 뒤에야 그 옳고 그른 것을 분변하겠습니까?”하였다.

임금이 또 전교하기를, “하고 아니하는 것은 내가 마땅히 처리하겠다. 삼자(三子)에 능통한 자를 기록하여 아뢰라.” 하였다.

공호이단은 논어 위정편 16장에 나오는 말로 子曰 攻乎異端이면 斯害也已니라.(공자 曰 이단을 전공하면 이 해롭다.)이 그것이다.

이 문장에서의 키워드는 공(攻)인데, 공(攻)은 전공(專攻)과 공격(攻擊)의 두 가지의 의미가 있는데, 이를 해석하는 학자에 따라 의견이 분분하다.

주자나 범조우나 정약용 전공(專攻)의 의미로 해석하고, 양백준은 공격의 의미로 보았다. 일반적으로 공(功)을 전공(專攻)이라고 풀이해 왔고, 야이(也已)도 논어에서는 모두 한정적 의미인 어조사로 쓰여 왔기에 이(已)를 지(止)로 보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된다.

왜냐하면 두 가지 다 말이 되고,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주자를 비롯한 대부분의 송유(宋儒)들은 전공하다고 풀이하여 이를 불교와 양주(전국시대 학자), 묵자의 학설을 전공하면 안 된다는 것으로 주로 불교의 공격 용어로 사용해 왔다.

반면 양백준은 공을 공격의 의미로 보았다. 그 근거로 논어에 모두 4번의 공(攻)이 나오는데, 선진(先進)편 16장의 ‘子曰 非吾徒也로소니 小子아 鳴鼓而攻之 可也니라.<(세금을 더 거두게 한 구(求: 冉有)는 우리 무리가 아니니, 소자들아. 북을 울려 죄를 성토함이 옳다.)’와 안연(顔淵)편 21장의 ‘攻其惡이요 無攻人之惡이 非修慝與아(자신의 악을 다스리고, 남의 악을 다스리지 않음이 사특한 마음을 다스리는 것 아니겠느냐?)’에 나오는 3개의 공(攻)자가 모두 ‘공격하다’라고 해석해야 되니 여기서도 그렇게 해석해야 된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에 대해서 주자는 ‘攻其惡 無攻人之惡’을 해석함에 있어서도 전치(專治)란 의미에서 ‘專於治己而不責人(자기 몸을 다스림에 오로지하고 남을 탓하지 않으면)’이라고 주해하여 이를 반박했다.

공자 같은 성인이라면 이단을 공격하면 해롭다고 이단의 학설도 다 하늘의 뜻, 진리를 포함하고 있다면 모두 다 수용해야 한다고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즉 공격하지 말고 잘 헤아려서 피해만 보지 말라는 의미가 더 강하지 않을까 말이다.

이를 송유(宋儒)들처럼 전공(專攻)하면 해롭다고 이단인지 아닌지는 살피되 전공은 하지 말라고 그 의미를 축소시킬 필요가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왜냐하면 공자께서도 노자(老子)를 찾아가서 도(道)를 물은 적이 있었기 때문에, 도를 추구하는데 그 방법론이 조금 다르다고 전공하지 말라고 하시지는 않았을 것이 아닌가? 그냥 공격하면 종국에는 싸움이 일어나 해로울 테니 공격하지는 말라고 하신 말씀으로 보아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기(史記)나 공자가어(孔子家語)를 보더라도 공자께서 이단(異端)을 공격한 사례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전공(專攻)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도 틀린 말은 아니라서 이 두 주장을 다 함께 실어 둔다.

성종이 학문적 욕구 충족을 위하여 노자, 장자, 열자를 알고자 승정원에 이들 전문가를 수소문해 보라고 지시했지만 홍문관에서도 “이단의 글을 널리 본 뒤에야 그 옳고 그른 것을 분변하겠습니까?” 하며 말리니 성종은 “하고 아니하는 것은 내가 마땅히 처리하겠다. 삼자에 능통한 자를 기록하여 아뢰라.”고 한 것이다.

사실 송유(宋儒)들도 불교를 이단(異端)이라고 확정했다는 것은 바로 불교 교리를 깊이 연구한 결과일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단인지 아닌지를 알 길이 없을 것이니 말이다. 성종(成宗)도 노장(老莊) 사상을 알고 싶어서 그 전문가를 알아보라고 한 것인데, 그런 책을 보면 점점 그 속으로 빠져드니 아예 보지도 말라고 주청들을 하니 임금의 입장에서 얼마나 짜증나는 일이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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