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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공부는 심신에 유익함을 위해서일 뿐이다제88화(話) 술이부작(述而不作)
김세현 논설위원  |  ks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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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3.04  08:4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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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22년 4월19일, 소나무 충해의 제거를 명하고, 노공(奴貢)의 폐단과 본인이 찬술한 서적에 대해 언급하다.

차대가 있었다. 상이 제신에게 하유하기를

“공자가 일찍이 이르기를 ‘옛 것을 전술하기만 하고 창작은 하지 않았다.[述而不作]’ 하였는데, 나의 평생 공부는 1부(部)의 주서(朱書)에 있다. 내 나이 20세 때에 주서회선(朱書會選)을 편집하고 또 춘방(春坊)·계방(桂坊)과 협력하여 주해(註解)를 초정(抄定)하였고, 또 어류(語類)에 구두점을 찍었다. 30세 때에는 주자회통(朱子會統)을 편집하고, 또 고 유신(儒臣) 한억증(韓億增)이 편집한 주서(朱書)를 정정(証定)하였으며, 또 자양회영(紫陽會英) 및 주서각체(朱書各體)를 편집하였다. 40세 이후에는 주서를 두루 열람한 것이 많은 가운데 근년에 또 주서백선(朱書百選)을 편집하였고, 작년 여름부터 가을까지는 주자전서(朱子全書) 및 대전(大全)·어류를 가져다가 구어(句語)를 절략(節略)하여 또 한 책을 만들어서 주자서절약(朱子書節約)이라 명명하였다. 요즘에는 또 주자대전 및 어류와 그 밖의 주 부자(朱夫子)의 손에서 나온 편언척자(片言隻字)까지를 한데 집대성하여 일부의 전서(全書)로 편집하려 하고 있다. 그리하여 편집이 다 이루어지면 장차 주합루(宙合樓) 곁에 방 하나를 별도로 마련하여 주 부자의 진상(眞像)을 봉안하고, 아울러 그 안에다 전서의 판본(板本)을 갈무리하고자 한다. 나는 주 부자에게 실로 사사(師事)하는 정성이 있으므로 이와 같이 하고자 한 것이다. 그리고 대학연의보(大學衍義補)는 곧 나라를 다스리는 큰 법칙으로서 그 글됨이 참으로 진선진미하여, 내가 일생 동안 좋아한 것이 바로 이 글에 있었다. 20년 전에 이 책을 손수 베끼었는데, 요즘에 또 다시 읽으면서 다시 베끼어 서산(西山: 송나라 진덕수(眞德秀)의 호.)의 대학연의(大學衍義)와 합해서 내용을 가려 뽑고, 또 대학(大學)의 경문(經文)·전문(傳文)과 주자의 장구(章句)를 각단(各段)의 첫머리에 기재해서 초계 문신들로 하여금 정서(淨書)하도록 하였으며, 또 호남의 유생들로 하여금 대학 1본(本)을 교정하도록 하였다. 이것이 모두 나의 요즘 공부하는 대략인데, 요는 나의 심신에 유익함을 위해서일 뿐이다.”하였다.

夫子嘗曰, ‘述而不作’, 子之平生工夫.

이 말은 술이(述而)편 1장의 말로

子曰 述而不作하며 信而好古를 竊比於我老彭하노라.

(공자 曰 전술(傳述)하기만 하고 창작(創作)하지 않으며 믿고 옛것을 좋아함을 내가 속으로 우리 노팽(老彭)에게 견주노라.)

이 문장에 주자(朱子)가 주해(註解)하기를 술(述)은 옛것을 전술(前述)할 뿐이요, 작(作)은 처음으로 창작(創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작(作)은 성인(聖人)이 아니면 불가능하고, 술(述)은 현자(賢者)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노팽(老彭)은 상(商)나라의 어진 대부(大夫)로 아마도 옛것을 믿고 전술(前述)한 자인 듯하다.

공자께서는 시경(詩經)과 서경(書經)을 산삭(刪削)하고, 예(禮)와 악(樂)을 정하셨으며, 주역(周易)을 찬술(贊述: 부연 설명.)하시고 춘추(春秋)를 편수(編修)하시어 모두 선왕(先王)의 옛것을 전술(傳述)하셨고, 일찍이 새로이 창작한 것이 있지 않았다. 그러므로 스스로 말씀하시길 이와 같이 하셨으니, 이는 감히 창작하는 성인(聖人)을 자처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또한 감히 드러내놓고 옛 현인(賢人)에게도 스스로 붙이지 못하신 것이니, 그 덕(德)이 더욱 높아질수록 마음이 더욱 겸손해져서 스스로 그 말씀이 겸손함을 알지 못하신 것이다. 그러나 이 무렵이면 창작은 대략 갖추어졌으므로 공자께서 성인(聖人)을 집대성하여 절충하신 것이니, 일은 비록 전술(傳述)이나 그 공(功)은 창작보다 훨씬 크다. 고 했다.

맹자(孟子)에도 공자를 군성지대성(群聖之大成)이라고 하여 집대성(集大成)이라 했는데, 이 집대성(集大成)이란 말은 음악을 연주할 적에 금(金: 鐘)으로 소리를 퍼뜨리는데 이는 조리(條理)를 시작함이고, 옥(玉: 石磬)으로 거두는데 이는 조리(條理)를 끝냄이다. 조리(條理)를 시작함은 지(智)의 일이고, 조리를 끝냄은 성(聖)의 일이다. 공자가 백이(伯夷), 이윤(伊尹), 유하혜(柳下惠) 3성인(聖人)의 일을 모아서 한 분의 대성(大成)이 되신 것을 음악이 한 장(章)이 끝나는 소성(小成)을 모아서 9장(章)이 끝나 음악 전체가 끝나는 대성(大成)에 비유한 것이다. 여기서의 군성(群聖)이란 시(詩), 서(書), 예(禮), 악(樂), 역(易) 등의 창작자를 가리킨다.

예기(禮記)에도 창작하는 자를 일러 성(聖)이라 하고, 전술(傳述)하는 자를 일러 명(明)이라고 했는데, 주자(朱子)는 여기서 현(賢)으로 치환해 놓았다.

노팽(老彭)에 대한 기록은 대대례(大戴禮)에 옛날 상(商)나라 노팽(老彭)과 중괴(仲傀)라는 기록이 있는데, 포함(包咸)의 주(註)에 이들은 상(商:殷)나라 현대부(賢大夫)이다. 라고 했다. 중괴(仲傀)는 중훼(仲虺)로 탕왕(湯王)의 현신(賢臣)인데, 그가 탕왕(湯王)에게 아뢴 글이 서경(書經)의 중훼지고(仲虺之誥)이다.

이 기사는 정조 22년 4월 차대(次對)에서 정조(正祖)가 소나무 충해의 제거를 명하고, 노공(奴貢)의 폐단과 본인이 찬술한 서적에 대해 언급한 말 중에서 논어의 이 말을 인용하여 자신의 평생 공부는 주서(朱書)에 있었다면서

20세 때에 주서회선(朱書會選)을 편집하고 또 춘방(春坊)·계방(桂坊)과 협력하여 주해(註解)를 초정(抄定)하였고, 어류(語類)에 구두점을 찍었다고 했다. 30세 때에는 주자회통(朱子會統)을 편집하고, 유신(儒臣) 한억증(韓億增)이 편집한 주서(朱書)를 정정(証定)했으며, 또 자양회영(紫陽會英) 및 주서각체(朱書各體)를 편집했다고 했다. 40세 이후에는 주자의 책[朱書]을 두루 열람한 것이 많았는데 근년에 또 주서백선(朱書百選)을 편집했고, 작년 여름부터는 주자전서(朱子全書) 및 대전(大全)·어류를 가져다가 구어(句語)를 절략(節略)하여 주자서절약(朱子書節約)이란 책을 냈다. 요즘에는 또 주자대전 및 어류와 그 밖의 주 부자(朱夫子)의 손에서 나온 편언척자(片言隻字)까지를 한데 집대성하여 일부의 전서(全書)로 편집하려 하고 있다. 면서 스스로 주자(朱子)를 사사(師事)하는 정성으로 주자(朱子)에 관한 책은 모두 섭렵하여 재정리를 했다고 했으니 정조(正祖)는 조선의 역대 임금 중 가장 주자학(朱子學)에 정통한 군주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정조 자신이 가장 좋아한 책이 대학연의보(大學衍義補)로 심신(心神)의 유익을 위해 20년 전에 손수 베끼고 요즘 진덕수(眞德秀)의 대학연의(大學衍義)와 합해서 정서(淨書)하여 교정했다고 했다.

이들 책들은 요즘도 우리가 보는 어제(御製) 사서삼경(四書三經)으로 유학(儒學)의 정본(定本)으로 자리 매김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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