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 2019.3.22 금 10:33
  • 영어
  • 일본어
  • 프랑스어
  • 중국어
  • 스페인어
> 이런저런이야기 > 백천 조선왕조 베스트셀러 <논어>
정조가 어드바이스를 구한 신하 이관은 누구인가?제89화(話) 오우(吾憂)
김세현 논설위원  |  ksh@naver.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9.03.11  07:44:02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정조 15(1791년 淸 건륭(乾隆) 56년)년 8월 8일 庚戌

부총관 이관을 불러 만나다.

부총관 이관(李灌)을 불러 만나보았다. 이관은 나이가 80세였는데 은명(恩命)을 받고 사례를 하러 왔다. 상이 이르기를,

“경이 계방(桂坊)에 있을 때 나에게 도움 되는 바가 많았었고 나이든 신하에게 간언을 구하는 것도 역시 고사이니, 어찌 권고하는 말이 없을 수 있겠는가.” 하니, 이관이 대답하기를,

“공자께서 말씀하기를 ‘학문을 강구하지 못하는 것이 내 근심이다.’ 하셨고, 중용(中庸)에서는 ‘성(誠)이란 하늘의 도리이고 성하려 하는 것은 사람의 도리이다.’ 하였으니, 성이란 실다운 마음으로 실천해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하려고 하는 방도는 오로지 정신을 보존하고 아껴 조용하고 전일하게 하는 데 있습니다. 만약 잗단 일에 정신을 너무 소모하게 되면 정신이 여러 갈래로 갈라져 전일하지 못하게 되고 큰일에 부딪혔을 때는 도리어 권태증을 느끼게 될 우려가 있습니다.”

孔子曰: ‘學之不講, 吾憂也.

이 말은 술이(述而)편 3장의 말로

子曰 德之不修와 學之不講과 聞義不能徙와 不善不能改가 是吾憂也니라.

(공자 曰 덕(德)이 닦아지지 못함과 학문이 강습(講習)되지 못함과 의(義)를 듣고 옮겨가지 못함과 불선(不善)을 고치지 못하는 것이 바로 나의 걱정이다.)

이 문장에 윤돈(尹焞)이 말하길 덕(德)은 반드시 닦은 뒤에야 이루어지고 학문은 반드시 강습(講習)한 뒤에야 밝아지며 선(善)을 보면 능히 옮기고 허물을 고침에 인색하지 않는 이 네 가지는 나날이 새롭게 하는 요체(要諦)이다. 만일 이에 능하지 못하면 성인(聖人)도 오히려 근심하셨으니, 하물며 배우는 자에 있어서랴? 고 했다.

이 문장에서 훗날 소위 성인(聖人)의 네 가지 근심이라고 하는 말이 나왔는데, 덕(德)이 닦이지 못함과 학문이 강습(講習)되지 못함과 의(義)를 듣고 그 의를 옮겨서 행(行)하지 못함과 불선(不善)을 고치지 못하는 것이 바로 공자(孔子)님 자신의 걱정이자 그 제자들이 이를 이행하지 못할까 걱정이란 말이다.

이 말이 공자님 자신에 대한 말로 보는 이유는 바로 앞 문장이 묵묵히 기억하고, 배우고 싫어하지 않으며, 사람을 가르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默而識之, 學而不厭 誨人不倦]는 말에 이어서 이 문장이 나왔으므로 공자 자신이 그렇다는 말도 되는 동시에 제자들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그렇지 못함을 걱정하신 것이라고 보아도 되겠다.

이 기사는 정조 15년 8월에 정조가 80세의 부총관 이관(李灌)을 불러 만나보는 자리에서 정조가 말하길 이관(李灌)이 정조가 어릴 때 세자익위사(世子翊衛司)인 계방(桂坊)에 있을 때 나에게 도움 되는 바가 많았었고 나이든 신하에게 간언을 구하는 것도 역시 고사(故事)이니, 권고하는 말을 해 달라고 하자 이관(李灌)이 논어의 이 말을 인용하여 ‘성(誠)이란 하늘의 도리이고 성하려 하는 것은 사람의 도리이다.’라면서 성(誠)이란 실다운 마음으로 실천해가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성(誠)하려고 하는 방도는 오로지 정신을 보존하고 아껴 조용하고 전일하게 하는 데 있으니 잗단 일에 정신을 너무 소모하지 말라고 대답한 것이다.

이관(李灌)은 이함(李菡:1470-1534)의 9세손으로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습지(習之), 호는 만은(晩隱)이다. 아버지는 함열현감을 지낸 이덕항(李德恒)이며, 할아버지는 목천현감을 지낸 이배(李培)이고, 증조부는 문과를 거쳐 영흥부사를 지낸 이희인(李喜寅)이다. 그는 이재(李縡)의 문인으로, 가난하면서도 학문을 좋아하여 이름이 사방에 알려졌다. 음직(蔭職:과거를 거치지 않고 조상의 공덕에 의해 맡은 벼슬)으로 계방(桂坊:세자익위사)에 올랐으며, 대신이 경행(經行)으로 천거하여 연산현감이 되었다. 1779년(정조 3) 이재의 문집 끝에 있던 홍계희(洪啓禧)의 이름을 삭제하였다 하여 정언 유맹양(柳孟養)의 탄핵을 받아 사판(仕版:관리명단)에서 제명되었다. 수직(壽職:해마다 정월에 80세 이상의 벼슬아치와 90세 이상의 백성에게 은전으로 주던 벼슬.)으로 가선대부에 오르고 풍안군(豊安君)에 봉해졌다. 벼슬은 부총관에 이르렀고, 1791년 정조는 광주(廣州) 지방관에게 명하여 자신을 가르쳤던 이관의 안부를 묻기도 했다. 묘는 분당구 고등동에 있다.

부총관(副摠管)은 조선시대 중추적 군령(軍令)기관인 5위도총부의 종2품직 관리이다. 부총관(副摠管)은 도총관과 함께 5위도총부의 권한을 대표하는 관직으로 종2품 이하의 산계를 갖는 사람을 부총관에 임명했으며 정원은 5명이며 임기는 1년으로 규정했다.

김세현 논설위원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여백
여백
여백
신문사소개커뮤니티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명칭 : 노인행복신문  |  등록번호 : 서울, 아03332  |  등록일자 : 2014년 9월22일  |   제호 : 노인행복신문  |  회장 : 윤진평  |  발행ㆍ편집인 : 주장환
주소 : 서울시 강서구 가양동 허준로 175  |  발행일자 : 2014년 9월 25일  |  주사무서 또는 발행소의 전화 : 02)3662-5872  |  청소년책임자 : 노인영
Copyright © 2019 노인행복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