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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악(雅樂)됨이 진선 진미한 것입니다제95화(話) 문소(聞韶)
김세현 논설위원  |  ks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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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5.29  09:3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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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 1년(1506 丙寅 / 明 정덕(正德) 1년) 12월 17일(辛酉)

조강에서 여악 폐지와 경서 시험을 논하다.

조강에 납시었다. 서경(書經)을 강하였다. ‘소소(簫韶)가 아홉 번 연주되자 봉황이 와서 춤추었다.’[簫韶九成鳳凰來儀]란 말에 이르러, 시독관 김세필이 아뢰기를,

“소소의 음악에는 봉황과 짐승이 춤을 추었을 뿐만 아니라, 천여 년이 지나서 공자(孔子)가 제(齊)나라에 있을 때 소소를 듣고 말하기를, ‘음악이 이렇게까지 아름다울 줄은 생각하지 못하였다.’ 하였으니, 그 아악(雅樂)됨이 진선 진미한 것입니다. 세종 조에 이르러 아악이 또한 바로 잡혀 이를 종묘에 쓰고 문묘(文廟)에까지 썼는데, 근래에는 위로 궁궐로부터 아래로 사대부의 집에 이르기까지 오로지 여악(女樂)만을 숭상하므로 여악이 극성(極盛)하여 무례하고 바르지 못합니다. 원하건대 여악을 폐지하고 아악을 바로 잡으로서.” 하니, 전교하기를,

“여악을 혁폐하는 것이 합당한지의 여부를 대신해서 수의(收議)하라.”

하였다.

侍讀官金世弼曰: “簫韶之樂, 非徒鳳儀、獸舞, 歷千有餘歲, 孔子在齊, 聞韶曰: ‘不圖爲樂之至於斯也.’ 則其爲雅樂, 盡善、盡美.

소악(韶樂)에 대해서는 술이(述而)편 13장에

子在齊聞韶하시고 三月을 不知肉味하사 曰 不圖爲樂之至於斯也호라.

(공자께서 제(齊)나라에 계시면서 소악(韶樂: 순임금의 음악)을 들으시고, <배우는> 3개 월동안 고기 맛을 모르시며 말하길 음악을 만든 것이 이러한 경지에 이를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고 했다.)

공자께서 제(齊)나라에 있을 때란 노나라 소공(昭公) 25년으로 공자의 35세 때인데, 소공(昭公)이 제(齊)나라로 출분(出奔)하자 공자도 제(齊)나라에 가서 몇 년을 머물었다고 했으며, 사기(史記)엔 3월 앞에 학지(學之)란 두 글자가 있어서 소악(韶樂)을 배우는 동안 마음이 오로지 여기에 집중하여 고기 맛을 모를 정도였다는 것이다.

소악(韶樂)은 지극히 아름답고 또 지극히 좋으니 음악으로서 이보다 더한 것이 없다는 말인데, 이는 내용과 문채의 갖춤이 지극하여 감탄함이 깊어짐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니, 정성이 지극하고 감동이 깊은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지금 우리가 그런 소악(韶樂)을 재현(再現)해서 들을 길은 없지만 아마도 궁중 아악(雅樂)이 이와 흡사하지 않을까 짐작할 뿐이다. 장중한 아악(雅樂)을 감상하노라면 절로 내 마음이 따라가서 정서가 순화되는 느낌이 드니까 말이다.

이 소악(韶樂)에 대해서는 팔일(八佾)편 25장의 말로

子謂韶하사되 盡美矣요 又盡善也라하시고 謂武하사되 盡美矣요 未盡善也라히시다.

(공자께서 소악(韶樂: 순임금의 음악)을 평하시되 지극히 아름답고 지극히 좋다. 하셨고, 무악(武樂: 무왕의 음악)을 평하시되 지극히 아름답지만 지극히 좋지는 못하다. 하셨다.)

미(美)는 음악의 소리와 가락과 이에 맞춘 춤추는 모습의 성대함이고, 선(善)은 그런 아름다움의 실제로 우리의 감각 기관이 받아 들였을 때 절로 감흥이 일어 미(美)의 단계를 넘어 선(善)의 단계에 이르는 것을 말한다.

주자(朱子)는 이 문장을 주해(註解)함에 있어서 음악 자체의 순수성을 떠나 정치 논리를 대입시켜서, 순(舜)임금은 요(堯)에게 선위를 받아 훌륭한 정치를 이룩했고, 주나라 무왕(武王)은 주왕(紂王)을 정벌하여 백성을 구제했으니, 그 공이 같아서 그 음악이 모두 지극히 아름다운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순(舜)임금의 덕(德)은 천성대로 하여 읍양(揖讓)으로 천하를 얻었지만 무왕(武王)의 덕(德)은 <본성을 되찾으려고> 정벌하여 주살(誅殺)함으로써 천하를 얻은 탓에 그 실제에 있어서 같지 않아 음악에서도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이에 정자(程子)도 성탕(成湯)이 걸왕(桀王)을 유폐(幽閉)시킴에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무왕(武王) 역시 그러해서 음악도 극진히 좋지는 못하다. 고 했다.

이 기사는 중종 1년 12월 중종이 조강(朝講)에 나와서 여악(女樂) 폐지와 경서 시험을 논하는 자리에서 이 말이 나온 것인데, 이 자리는 서경(書經)의 ‘소소(簫韶)가 아홉 번 연주되자 봉황이 와서 춤추었다.’[簫韶九成鳳凰來儀]란 말에 이르러, 시독관 김세필이 아뢰기를,

“소소의 음악에는 봉황과 짐승이 춤을 추었을 뿐만 아니라, 천여 년이 지나서 공자(孔子)가 제(齊)나라에 있을 때 소소를 듣고 말하기를, ‘음악이 이렇게까지 아름다울 줄은 생각하지 못하였다.’ 하였으니, 그 아악(雅樂)됨이 진선 진미한 것입니다. 세종 조에 이르러 아악이 또한 바로 잡혀 이를 종묘에 쓰고 문묘(文廟)에까지 썼는데, 근래에는 위로 궁궐로부터 아래로 사대부의 집에 이르기까지 오로지 여악(女樂)만을 숭상하므로 여악이 극성(極盛)하여 무례하고 바르지 못합니다. 원하건대 여악을 폐지하고 아악을 바로 잡으로서.” 하니, 전교하기를,

“여악을 혁폐하는 것이 합당한지의 여부를 대신해서 수의(收議)하라.”

고 하였지만 여악(女樂)의 폐지는 오래도록 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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