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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를 따르면 길(吉)하다제97화(話) 소사음수(疏食飮水)
김세현 논설위원  |  ks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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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9.19  09: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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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7화(話) 소사음수(疏食飮水)

중종 37년(1542 壬寅 / 明 가정(嘉靖) 21년) 3월 25일(乙巳)

올바른 정사를 보도록 검토관 윤희성·특진관 황헌이 건의하다.

석강에 나아갔다. 검토관 윤희성(尹希聖)이 아뢰기를,

“<후한의> 동평왕 창(東平王蒼)은 ‘선을 하는 것이 가장 즐겁다.’고 말하여 고금의 미담이 되었는데, 당시에 명제(明帝)가 선을 좋아하여 이 말을 듣기를 즐거워하였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순(舜)임금과 우(禹)임금의 고사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야 없지만 우임금은 선한 말을 들으면 절을 했고, 순임금은 남에게서 선을 취하여 자신이 그 선을 행했다고 하였으니, 선을 좋아하는 마음은 한 가지입니다. 예로부터 남의 임금이 된 이가 엄숙하고 공순하며 공경하고 두려워하여 감히 안일에 빠지지 않는다면 마침내 부와 영화를 누리고 종묘와 자손이 길이 보존되는 것이니, 이것이 곧 ‘도를 따르면 길(吉)하다.’는 것입니다. 안일에 빠진 임금은 능히 선을 할 수 없으며 궁실과 음식, 사냥놀이와 뱃놀이에 빠져 극도로 즐기며 오만하고 나태해지면 마침내는 망하는 근심이 생기게 되니, 이것이 곧 ‘악을 따르면 흉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본다면 ‘선을 하는 것이 가장 즐겁다.’는 말은 확실한 말입니다. 선을 행하고 마음에 느끼면 마음이 지극히 즐거운 법이니, 공자의 제자 중에 안회(顔回)는 도시락 밥과 표주박 물을 먹고도, 남들이 견디지 못하는 근심인데 그 즐거움을 고칠 생각을 하지 않았으니, 이는 곧 선을 하는 즐거움입니다.

공자가 말하기를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 구부려 베개 삼아도 즐거움이 그 가운데 있다.’고 한 것은, 나물 먹고 물 마시는 자체가 즐거운 것이 아니라, 선을 하는 즐거움이 있다는 것입니다.

如孔門弟子, 惟顔回, 一簞食,一瓢飮, 人不堪其憂, 回也不改其樂, 有爲善之樂也. 孔子言: ‘飯蔬食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 非樂蔬食飮水也, 有爲善之樂也.

이 말은 술이(述而)편 15장의 말로

子曰 飯疏食(사)飮水하고 曲肱而枕之라도 樂亦在其中矣니 不義而富且貴는 於我에 如浮雲이니라.

(공자 曰 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시면서 팔을 굽혀 베더라도 낙(樂)이 또한 이 가운데 있으니, 의롭지 못하고서 부(富)하고 또 귀(貴)함은 나에게 있어서 뜬구름과 같다.)

이 문장에 주자(朱子)가 주해(註解)하길 반(飯)은 먹음이요, 소사(疏食)는 거친 밥이다. 성인(聖人)의 마음은 온전히 천리(天理)대로 가지고 있어서 이처럼 매우 곤궁(困窮)함에 처하더라도 낙(樂)이 또한 있지 않음이 없다. 저 의롭지 못한 부귀(富貴) 보기를 마치 뜬구름이 없는 것처럼 여겨 막연해서 그 마음에 동요됨이 없으신 것이다.

정이천(程伊川)이 부연하길 거친 밥을 먹고 물 마심을 즐거워 한 것이 아니라 비록 거친 밥을 먹고, 좋은 반찬이 없어서 물을 마시더라도 그 낙(樂)을 바꿀 수 없는 것이니, 의롭지 못한 부귀(富貴)는 뜬구름 같이 여겨서 마음에 동요됨이 없다는 것이다.

반(飯)은 먹음이요, 소사(疏食)는 거친 밥이라고 풀이하는데, 혹자는 피[稷]밥을 의미한다고 하는데, 피밥은 좋지 못한 곡식으로 지은 밥이고, 거친 밥은 덜 정제된 곡식으로 지은 밥을 말하는데, 기름진 쌀밥이 아니라 잡곡으로 지은 밥을 소사(疏食)로 보면 될 것 같다.

요즘에는 성인병 예방을 위해서 오히려 거친 밥이 더 좋다고 하니, 과유불급(過猶不及)의 교훈인 것 같다.

왜냐하면 군자는 한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인도(仁道)를 펼치는 즐거움으로 비록 곤궁(困窮)하더라도 개의치 않으며, 더구나 불의(不義)한 부귀(富貴)라면 부운(浮雲)처럼 헛되고 가볍게 여긴다는 말이다.

이와 같은 말로 옹야(雍也)편 9장에

子曰 賢哉라 回也여 一簞食(사)와 一瓢飮으로 在陋巷을 人不堪其憂어늘 回也不改其樂하니 賢哉라 回也여.

(공자 曰 어질다. 안회(顔回)여! 한 대그릇의 밥과 한 표주박의 음료로 누추한 시골에 사는 것을 딴 사람들은 그 근심을 견뎌내지 못하는데, 안회(顔回)는 그 즐거움을 변치 않으니, 어질다. 안회(顔回)여!)

안회(顔回)의 가난함이 이와 같았지만 그는 처하기를 태연히 하여 그 즐거움을 해치지 않았으니, 공자께서 어질다고 두 번이나 거듭 감탄하셨다.

한 대그릇의 밥과 한 표주박의 음료로 누추한 곳에서 사는 것이 즐거울 리는 없다. 그러나 안회(顔回)는 그 가난으로 마음을 얽매이지 않고 인(仁)의 도(道)를 행하는 즐거움을 변치 않아서 공자께서 감탄한 것이다.

사실 아마도 안회(顔回)가 단명(短命)한 것은 누추한 곳에서 살아서 위생 상태가 나쁜데다가 이처럼 영양 부실로 말미암아 면역력이 떨어져서 일찍 죽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석강(夕講)에서 하는 말은 선(善)을 하는 즐거움으로 단사표음(簞食瓢飮)의 곤궁함도 감내할 수 있을 것이란 말이다.

경연(經筵)의 시강관들이 말하는 바와 같이 과연 선(善)을 행하는 즐거움으로 곤궁(困窮)함을 이길 수 있을까?

순(舜)임금은 천하를 다 가졌으면서 그 마음 씀이 사해 만민을 한마음으로 여겨서 선(善)을 생활화했기에 성인(聖人)의 반열로 추숭하지만 범인(凡人)들이야 선(善)을 행하는 즐거움과 곤궁(困窮)함을 맞바꾸기는 어려울 것이다. 물론 선(善)을 행하면 행복해 지지만 자신의 곤궁함과 바꾸기는 쉽지 않으니까 말이다.

이 경연에서 말하는 요지는 중종(中宗)에게 올바른 정사(政事)를 펼치라는 것으로서 예로부터 임금이 엄숙하고 공순하며 공경하고 두려워하여 감히 안일에 빠지지 않는다면 마침내 부(富)와 영화를 누리고 종묘와 자손이 길이 보존되는 것이니, 이것이 곧 ‘도를 따르면 길(吉)하다.’는 것이고, 반대로 안일에 빠진 임금은 선(善)을 할 수 없으며 궁실과 음식, 사냥놀이와 뱃놀이에 빠져 극도로 즐기며 오만하고 나태해지면 마침내는 망하는 근심이 생기게 되니, 이것이 곧 ‘악을 따르면 흉하다.’는 것이란 말을 풀이하면서 논어의 이 말들을 인용한 것이다.

만년의 중종에게 이런 풍간(諷諫)을 하는 것이 바로 안일에 빠져서 궁중 여인들의 치마폭에 감겨서 연락(宴樂)으로 지내는 것을 꼬집고 있다.

중종이 죽고 나서 사관(史官)들이 평하길, 상(上=중종)은 인자하고 유순한 면은 남음이 있었으나 결단성이 부족하여 비록 일을 할 뜻은 있었으나 일을 한 실상이 없었다. 좋아하고 싫어함이 분명하지 않고 어진 사람과 간사한 무리를 뒤섞어 등용했기 때문에 재위 40년 동안에 다스려진 때는 적었고 혼란한 때가 많아 끝내 소강(小康)의 효과도 보지 못했으니 슬프다.

또 다른 사관(史官)은 중종을 평가하길, 인자하고 공검한 것은 천성에서 나왔으나 우유부단하여 아랫사람들에게 이끌리어 진성군(甄城君)을 죽여 형제간의 우애가 이지러졌고, 신비(愼妃)를 내치고 박빈(朴嬪)을 죽여 부부의 정이 없어졌으며, 복성군(福城君)과 당성위(唐城尉)를 죽여 부자간의 은의(恩義)가 어그러졌고, 대신을 많이 죽이고 주륙(誅戮)이 잇달아 군신의 은의가 야박해졌으니 애석하다. 고 치적(治積)보다는 우유부단한 실정(失政)을 들춰내고 있으니 그의 치세(治世)를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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